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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충성 김

환웅의 신시개천과 농경문화전통

최종 수정일: 2023년 3월 29일




우리는 우리의 원시조를 단군으로, 그의 역사를 담은 신화를 「단군신화」라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정작 일연이 기록한 단군신화에 있어서, 단군은 신화의 유기적 구조 속에 부차적인 역할만 할 뿐더러, 지도자로서 그의 사상이나 역할이 온전히 드러나 있는 것도 아니다. 단군신화를 볼 때 그 중심적인 위치에서 존재하는 것은 단군이 아니라 환웅이며, 단군의 고조선건국사가 아니라 환웅의 신시건국사가 그 이야기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홍익인간 재세이화」라는 지도이념을 제시한 것도 환웅이요, 이에 기반해 국가적 질서를 구축한 것 또한 환웅이다. 물론 단군 역시 환웅의 아들이요 그 계승자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 민족의 어떤 본원적 전통을 말하기 위하여서는 우선 환웅과 환웅이 터잡은 신시의 역사를 우선적으로 고찰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우리의 원형사상과 원형질서는 바로 원시조 환웅의 역사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기록에 따르면 환웅은 천자 환인의 서자로 일찍부터 인간세상을 구제할 뜻을 세워 천손의 증표인 천부인을 들고 3000여명의 무리와 함께 태백산 신단수에 내려와 도읍을 삼고 신시를 세웠다고 한다. 환웅은 초기 민족사에 있어서 한 사람의 혁명가로서 자신을 따르는 무리와 함께 신시에 사는 인간들의 문화와 관습을 혁신하고 홍익인간이라 말하는 지도이념을 바탕으로 신질서를 건설해 내었던 것이다.


환웅은 지상에 강림하면서 360여가지 인간사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주곡을 가장 우선적인 문제로 다루었다는 것이 주목된다. 환웅과 그의 전사들은 자신들이 인간세계에 일으킨 변혁 중에서도 가장 중심적인 것이 농경문화라고 보았던 것이다.


우리 민족은 산의 민족이라 할 정도로 지리적으로 산지가 발달되어 있고 지리적, 풍토적으로 농사를 짓는 정착생활을 영위하기에 적합한 터전을 가지고 있었다. 환웅의 아버지 환인이 인간세계를 개조하기 위해 이 땅을 정한 것도, 농경문화를 바로 세우기에 적합한 지리적 특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유추할 수 있는 부분이다.


환웅이 강림하기 전 원주민들은 오랜 인류의 빙하기에서 벗어나 새로운 질서를 염원하고 있었다. 이 때 하늘에서 강림한 환웅의 교화를 통하여 비로소 우리 민족은 조국의 터전에 안착하게 되고, 마을을 단위로 공동생활의 기반을 마련하며 피와 흙의 유기적 관계 속에서 밭을 갈고 터전을 일구는 수천년 생활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우리 민족이 유난히 땅을 사랑하고 흙에 애정을 느끼고 죽어도 자기 고향에 묻히지 못하면 수치스럽다고 하는 뿌리 깊은 애향정신을 느끼는 것은 바로 환웅의 신시시대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민족전통이라 할 수 있다. 자연의 법칙에 따라 생활하며 살아도 땅에 살고 죽어도 이 땅에 한줌의 흙으로 화하는 것이 상고시대로부터 계승된 우리 조상들의 삶이었던 것이다.


환웅이 이렇게 신시를 건국하고 하늘의 도를 펼치던 때에, 곰과 호랑이가 환웅을 찾아와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간청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 대목에서 환웅은 곰과 호랑이에게 인간이 되는 방법을 제시하는데, 여기에 있어서 다른 기록을 통해 알 수 없는 환웅의 구체적 세계관, 인간관이 단적으로 드러난다. 쑥과 마늘을 먹으며 동굴에서 100일을 버티라는 지시가 그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호랑이와 곰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으나, 신화의 기본이 상징이라는 사실을 근거로 볼 때, 호랑이와 곰은 해당 동물을 종족적 상징으로 삼는 원시 종족이라고 하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국가상징이나 회사, 단체의 상징으로 동물을 형상화한 이미지를 사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고대 사회에 있어서도 자신의 언어나 이념을 갖지 못한 종족들은 자신의 생활관습과 유사한 행동패턴을 보이는 동물을 상징으로 삼아 자신의 정체성을 구축해 왔던 것이다. 따라서 곰과 호랑이가 환웅을 찾아온 것은, 수렵생활 혹은 유목생활을 하던 부족이 신시에 찾아와 동화되고자 했던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렇다면 여기에 있어서 환웅이 인롭간이 되기위한 통과의례로서 지시한 내용의 의미는 무엇인가? 첫째로 쑥과 마늘의 섭취를 요구했다는 점을 살펴보면, 이것은 예로부터 오늘날까지 이어내려오는 민족의 식생활의 전통이라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금일에도 중국이나 일본과 비교하여 볼 때 쑥과 마늘을 동시에 섭취하는 민족은 우리 한민족이 유일하다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환웅은 농경생활의 산물로 우리의 주식이 된 쑥과 마늘의 섭취를 통하여 환웅족의 문화생활에 동화되도록 한 것이다.


둘째로 환웅은 동굴에서 100일 동안 은둔할 것을 곰과 호랑이에게 요구하였다. 이것은 문화적 인간으로 거듭나기 위한 인내심의 함양, 내적 자기 수양인 동시에, 방랑하며 살던 과거사를 청산하고 이 땅 위에 뿌리잡고 조국의 터전 위에서 정착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능력을 시험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여기서 드러나는 환웅의 세계관은, 「인간」이라는 것은 단순한 경험적 실체가 아니라 특정한 문화와 양식을 가진 「문명인」이라는 것이다. 단순히 두 팔 두다리를 가지고 걸어다닌다고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니요, 인간의 본성에 합당한, 신시의 사상에 부합하는 정신적, 문화적 관습을 획득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환웅이 신시에 개천하면서 인간사의 360여가지 일 중에서도 주곡을 우선순위에 두었듯 여기에 있어서도 인간화의 여부는 농업문화에 뿌리내릴 수 있는 자격을 가지고 있는지가 중요한 요소가 된다. 환웅에게 있어서는 자기 토지에 온전히 뿌리내린 인간, 그 생활 속에서 타인과 협동하며 곡식을 생산할 수 있는 인간이 참된 인간이며, 경계없이 방황하는 유목민족의 생활양식은 신시의 정신에 맞지 않는 것이라 보았던 것이다.


여기에서 종교적 문제와 현실의 문제가 통합된 환웅사상의 특질이 드러난다. 곰과 범이 동굴에서 금욕적 생활을 감내해야하는 것은 기독교신앙이 말하듯 어떤 내세에서의 구원을 위한 것이 아니다. 현실 속에서 보다 고차원적인 문화생활, 농촌공동체의 정신에 통합되기 위한 한 과정인 것이다. 곰과 범이 자기부정을 통해 동굴에서 무(無)로 돌아가는 결단을 해야 했던 것은, 원시적 인간의 껍데기를 벗고 다시 유(有)로 나오기 위하여, 민족공동체의 구체적 생활에 통합되기 위한 것이었다.


「홍익인간 재세이화」의 사상적 의미 또한 이와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단순한 현실을 무시한 종교적인 것은 아니요, 또한 종교를 무시한 세속주의 일변도로 흐르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인간사회가 당면한 현실적 삶의 문제를 해결하되, 또한 그것을 실현하는 과정을 통해 하늘의 이치를 깨닫고 그것을 통해 하늘의 진리에 도달하는 차원높은 인간문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현실적인 전제로 환웅은 「주곡」의 문제, 다시 말하여 농경생활의 문제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홍익인간의 원형사상은 농촌공동체의 원형질서, 즉 자연 속에서 나고 자라며 마을 사람들과 협동하고, 사계절의 운행에 따라 곡식을 수확하고 거두며 이 모든 자연의 운행을 주관하는 하늘의 은혜에 감사하는 삶의 질서를 매개로 지상에 실현되는 것이다. 하늘의 뜻은 어떤 추상적인 지성이나 사유에 의해 드러나지 않고 삶의 현실적 체험을 통해 인간에게 현현한다. 이러한 자기 땅을 개척하는 일련의 실천행위, 창조적 노동을 통해 인간은 자신의 현실적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하늘의 존재와 그 이치를 깨닫고 하늘에 감사하는 종교적 신앙을 확고하게 다지게 된다. 여기에 있어서 현세를 부인하는 내세는 없으며 지상을 부인하는 천국 또한 없다. 인간이 하늘의 이치에 따라 행하는 성실한 노동, 공동체의 번영과 결속 아래서 하늘의 왕국은 지상에 구현될 것이다.


그 하늘의 은혜를 표상하는 것이 태양이요, 그 태양의 구체적 화신인 환웅이다. 신시에 있어서 태양은 하늘에서 내리는 축복이지만 동시에 지상에서 자신과 함께 살아가는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환웅은 완전해탈을 논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왕국에 가기 위해 현실을 포기할 것을 말하지도 않았다. 그는 신시 백성들 속에서 그들과 함께 호흡하며 인간세상의 개조를 꿈꾼 한 사람 혁명가였다. 신시 백성들에게 태양은 단순히 하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현실에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영웅의 형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러한 태양시조신앙은 신시와 신시를 계승한 조선의 멸망과 함께 사라진 것이 아니며 농경문화전통이 계승된 고구려와 백제, 신라를 비롯한 민족사의 후대 국가들의 건국신화에 고스란히 전승된 것이다. 또한 우리의 건국이념인 홍익인간의 정신, 인간의 생활을 중심삼고 종교와 현실을 통합하려는 이러한 세계관은 향내와 향외의 종합으로서 오랜세월 지속되어온 우리의 근원정신을 표상하는 것이다.


이렇듯 환웅신화는 단순히 민족의 역사적 시원을 설명할 뿐 아니라 현대까지 지속되는 민족의 피에 내재한 집단적 무의식을 설명하고 있다. 기원과 지속에 있어 우리 민족의 원형적 성격을 드러내기에 우리가 홍익인간을 우리 민족의 원형사상이요, 그 세계관에 터잡고 구축된 신시를 우리 민족의 원형질서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오늘날 우리는 환웅의 지도이념과 질서로부터 점점 멀어져가고 있는 것 같다. 우리 민족의 피의 법칙은 물질만능의 황금의 법칙에 대체되어 가고 있다. 「농촌을 뜯어고쳐 도시를 세우는」맹목적인 서구식 근대화와 산업화는 지난 수천년간 민족정신과 생명력의 원천으로 자리잡은 농촌공동체를 파괴, 해체하였으며 농민의 아들 딸들은 자기 터전에서 벗어나 도시문명이 제공하는 향락주의와 물질주의 문화에 동화되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이들이 떠난 자리를 세계각지에서 몰려든 이민자들이 대체해 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 전통에 비추어 볼 때 지극히 이례적인 것이며 서구의 앵글로색슨 문화의 유입에 따른 문화적 퇴폐현상이라 할 수 있다.


약탈로 생업을 삼는 바이킹의 해적정신을 뿌리삼은 오늘날 앵글로색슨의 세계지배 사상은 한민족의 철학적 세계관과는 본질적으로 대립하는 것이다. 경계없이 방랑하며 돈냄새가 나는 곳이면 어디든 자리잡고 이민족을 착취하는 이들의 정신세계는 창조적 노동문화가 아닌 기생적 상업문화에 근간을 두는 것이요, 인륜과 도의가 아닌 이익과 탐욕에 중심을 두는 것이요, 피와 흙에 뿌리내린 것이 아니라 바다를 항해하는 부랑아의 정신, 이른바 코스모폴리타니즘에 토대를 둔 것이다. 오로지 자신의 이익밖에 모르는 이들에게 있어서는 종교적 가치 또한 부를 축적하기 위한 일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오늘날 이러한 정신의 화신이라 할 세계자본주의와 금권지상주의의 총본산이 저 아메리카 대륙에 버티고 서 있는 것이다.


수천년전 우리 민족의 정착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범족은 토착문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떠나갔지만, 저 미국인들은 해적과 선교사를 태운 함선을 타고 이 땅에 들어와 온 나라를 들쑤시며 천손의 이념을 부정하는 저들의 사상과 제도를 강요하고 들어왔다. 그렇기 때문에 태양의 민족, 하늘의 자손인 우리는 19세기 저 서양 제국주의 침략자들과 생사를 건 싸움을 하지 않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 민족적 정체성의 차원에서는 차라리 자연스러운 일이었다고 하겠다. 비록 그들의 주체적 의지의 역량은 서구의 객관적 물질적 역량에 대하여 실패하였으나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투쟁은 오늘날 우리의 사명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그들의 실패를 반추하여 외래 제국주의에 맞서는 민족의 서사시적 투쟁을 지속해 나가야한다.


태초에 환웅이 혁명을 통하여 신질서를 이루었듯 오늘날 사회를 어지럽히고 민족문화전통을 해체하는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적 사회질서를 그 본원에서 혁신하지 않으면 안된다. 세계를 지배하려는 포스트모던적 상업주의 세력에 맞서 우리의 원형사상에 뿌리를 둔 순수한 민족의 전통, 본원적 질서로의 회귀가 필요한 것이다. 거기에서 황금시대의 질서, 신시 르네상스를 회복하는 것이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중심인 우리에게 부여된 역사적인 사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과업을 전개하는데 환웅 신화를 다시 논하는 것은 이것이야말로 과거 우리 민족의 전통을 표현하는 동시에 오늘날, 그리고 앞으로도 이어갈 우리의 정신문화적 본질을 해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고대적인 동시에 영원한 젊음을 가지고 우리 앞에 생생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우리의 뿌리인 동시에 우리의 지향을 드러내는 환웅신화는 전통과 혁명을 하나로 통합하려는 우리에게 있어 유의미한 정신적 원천이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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