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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충성 김

문승익의 정치사상 : 자아준거적 정치학의 모색

최종 수정일: 2023년 4월 19일



한국에 있어서 1970년대는 이른바 「한국적인 것」의 시대였다고 생각된다. 정권차원에서도 그렇거니와, 민간차원에서도 급속한 근대화 속에서 민족의 주체성을 되찾고자 하는 부단한 노력이 전개되었다. 학술계에 있어서도 이는 마찬가지로, 한국인이 서구로부터의, 외세로부터의 종속을 탈피하고 어떻게 주체적인 국가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된 것이다. 여기에서 학계에는 기성의 자유주의적 정치학을 비판하며 「국수적-반근대주의적」정치사상을 전개한 일련의 흐름이 등장한다.


물론 일민주의의 사례에서 보듯 이러한 정치사상은 결코 70년대에 고유한 것도 아니고, 한국정치사상사에 있어서 연속성을 가지고 전개되어 온 것이다. 다만 이전 세대의 학자들이 독일과 일본의 국법학의 영향관계 속에서 자신의 사상을 전개했던데 반해 이들은 해방 후 세대로서 미국식 개인주의 정치학의 영향 속에서 민족주의적 정치학으로의 전환을 모색했다는 점에서 보다 주체적인 형태의 사유를 보여준다고 하겠다.


오늘 소개할 문승익은 이러한 상황에서 주체적 정치학의 정립을 일관된 과제로 사유한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정치를 단순한 개인의 갈등조정이라는 이스튼식 정치학의 한계를 넘어서, 개인을 공동체 속에 포괄되는 존재로, 그리고 이러한 개인의 존재론적 구심점으로서 민족의 원초적 유대에 기반한 국가를 사유하고, 이를 단위로 하는 「자아준거적」정치학을 모색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문승익은 인간은 생활상의 필요에 의해, 필연적으로 타자와 관계하는 공존생활을 영위할 수 밖에 없다고 전제하고, 이러한 공존의 불가피성이라는 현실 위에서 공존생활의 공공적 형태는 오로지 하나의 자기완결적 존재로서 국가라는 단위 속에서 전개된다고 말한다. 여기에서 「개체적 자아의 주체성을 한 발자국도 넘어서지 못하는」자유주의적 사고, 그리고 그에 기인한 자유주의적 혹은 계급주의적 국가관은 오류를 가진 것으로 비판된다. 국가의 역할, 그리고 국가라는 경계 안에서 이루어지는 「정치」라는 것은 이스튼식 자유주의 정치학과는 달리 단순한 중립적 국가의 개인 간 갈등의 조정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민족공동체의 고유성, 실존적 거점을 구축하는데 의의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는 국가주의자라 할 수 있겠으나, 그가 국가와 정부와 체제의 개념을 구분하는데서 드러나듯 국가는 단순한 법과 권력의 영역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고, 적극적 도덕적 의미를 갖는 것이다. 물론 국가가 자신의 의지를 실현하기 위해 국민에게 공동규칙(국법)과 힘(정치권력)을 강제할 수는 있지만, 순조로운 국가생활은 이것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며 국가의 역할도 이 것에서 끝나는 것은 아니다. 국가 차원에서 법과 힘 이전에 국민의 생활을 근원에서 제약하는 「공공적 가치, 공공적 규범, 공공적 유대」, 다시 말해 「공존원칙」을 형성할 때 법과 힘도 그 실질적인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는 한국에 있어서 남북한을 막론하고 해방 이후 외래적인 이데올로기를 수입해 정부수립에 집중했을 뿐 그 정신적 윤리적 기초가 되는 민족적 공존원칙의 수립에 너무도 무관심했다고 말한다. 오늘날의 현실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정치적, 사회적 혼란은 이러한 공존원칙이 올바르게 수립되지 않은 역사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국민적 동질성을 확인하고 이들의 정신적 유대를 공공히 하는 이러한 원칙이 국민에 있어 체내화 되었을 때 공동윤리와 국가의식도 비로소 형성될 수 있으며 국가는 순조로운 발전을 기약할 수 있는 것이다. [1]


그런데 이 공존원칙이라는 것은 외부의 토양에서 무조건적으로 이식될 수는 없으며, 「인간본성에 합당한」공존원칙의 수립이 문제가 된다. 여기에서 인간본성이라는 것은 주체의 내적 성격을 포괄하는 것이다. 공존의 원칙이 개체들 밖에 외재하고, 개체들의 의지와 사고와 조화할 수 없다면 그것은 정치의 작동을 개체 외부에 두고 개체들의 주체성을 무시하여 개체의 실존적 소외만을 낳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식으로든 공존원칙이라는 것은 주체의 내적 필요에 근거하고 주체 자신 안에 내재한 원리의 자연스러운 결과물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문승익은 공공의 윤리는 「우리의 전통에 뿌리내린 것일 때」가장 효과적으로 구축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전통이라는 것은 단순히 근대화에 의해 극복되어야 할 낡은 봉건적 속박이 아니라, 「마치 계속해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마침내 바위에 흠을 파내듯이, 오랜 시간에 걸쳐서 비로소 공공적 결속」을 이루어낸 공공적 자아의 중요한 일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해방 후 비주체적인 「근대화」과정에서 자칫 내다버린 중요한 가치가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기반 위에서 공존생활이 영위될때 비로소 근대화도 가능하며, 그 산물인 민주주의 또한 기능할 수 있다고 말한다.


물론 여기서 그가 말하는 「민주주의」또한 결코 외래사상의 무조건적 수용으로서의 민주주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공존원칙의 외래로부터의 수입이 주체성의 상실로 귀결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외래적 민주주의의 무비판적 수용 역시 주체의 소외만을 낳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체를 무시한 「민주주의의 토착화」라는 것을 그는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자체내적 기존속성을 전연제거하는 토착화라는 것은 결국 토착화라는 본연의 목적을 배반하는 「자기패배적」작업으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결국 민주주의의 토착화라는 것은 주체가 이미 가진 자체내적 속성과 외부로부터 주입된 정치제도의 조화를 목표로 할 수 밖에 없지만, 이것이 가능한가의 문제에 대해서 그는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있어서 그는 「민주주의의 창조」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나무의 이식도 아니고, 그 나무 씨앗의 이입도 아니고 어떻게 하면 민주주의의 씨앗이 우리 속에서 자체생성될 것인가」하는 것에 논의의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민주주의는 어디까지나 그것이 우리들 자신의 자체내적 필요로부터 자라난 「자연적 생성물」이 되어하며 「자체외적 원천이란 결국 우리가 갖는 자체내적 필요에의 의식을 각성시키는데」그 역할을 다한다. 그리고 그러한 필요를 위하여 우리가 주체적인 의지를 가지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우리 나름대로의 제도」, 즉 민주주의 제도는 발전한다는 것이다. 물론 문승익은 그러한 민주주의를 미래형으로 남겨두고 있을뿐 그 구체적인 성격을 언급하고 있지는 않다. 다만 70년대 「서구의 민주주의를 어떻게 한국에 토착화할 것인가」라는 화두 속에서 외래사상의 토착화를 넘어선 「민주주의의 주체적 창시」의 문제를 제기한 것은 그 자체로 선구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볼 때 문승익의 정치이론을 관통하는 것은, 그것이 공존윤리를 말하는데 있어서나 국가이념의 정립 문제를 다루는데 있어서나 근대화나 민주주의의 문제를 다루는데 있어서나 일관된 「자아준거성」의 문제, 다시 말해 민족의 주체성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문승익이 남미의 종속이론을 국내에 소개한 것 또한 제3세계 피식민국가의 종속화 한 현실과 우리의 현실 사이에서 깊은 공통성을 발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자신의 논문 <종속이론>의 말미에 소개한 파머의 다음과 같은 구절은 그의 학문적 문제의식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부분이다.


"발전도상국가는 발전된 국가의 과거 경험으로부터 배울 점이 많이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발전된 국가가 항상 그들 자신이 처한 현실과 상황에 준거해서 저들의 이론과 정책을 형성해 왔다는 점이다. (발전도상국가에 의한 발전국가의의) 모방은 파멸로 귀착될 것이다. 왜냐하먼 여기서 모방은 타체의 현실과 타체의 이익에 들어맞도록 자체의 틀을 잘못 형성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물론 민족의 구체적 현실과 유리되어 학문의 상아탑 속에서 진리를 사유하고자 하는 고고한 현자들에게 「학문에는 국적이 없을지 몰라도 학자에게는 국적이 있다」라고 말한 문승익의 학문적 태도는 학문의 순수성에 대한 일종의 배반처럼 느껴질지 모른다. 그러나 어떤 위대한 학자도 결국 사회적 존재이고 공동체와 더불어 공존생활을 영위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오늘날 대학이 시장의 도구로 변질된 상황에서, 그리고 학자가 자유자본주의의 충견으로 봉사하고 있는 상황에서, 현실과 학문의 분리불가능성을 논했던, 그리고 민족의 현실과 발전에 봉사함으로써 학자의 소임을 다하고자 하였던 문승익의 정치사상은 오늘날에도 뜻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각주

  1. 이런 맥락에서 문승익은 해방 후 좌파나 우파와 거리를 두고 민족주의적 대원칙에 입각한 자주적 정치노선을 주장한 김구를 높이 평가하였다. 그는 민족을「영원한 혈통의 바다」에, 민주주의나 공산주의를 「일시적인 풍파」에 비유해 민족의 원초적 유대를 기반으로 한 자주적 민족국가 수립에 노력했다는 것이다.


참고자료

  1. 기유정, <박정희 정권의 한국적 주체성론과 한국 정치학계의 자기 균열>

  2. 기유정, <1960년대 후반~70년대 초 한국의 정치학과 문승익의 “정치주체론”>

  3. 문승익, 《자아준거적 정치학의 모색》

  4. 문승익, 《너와 나와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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