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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충성 김

한국 우익의 원형을 찾아서

최종 수정일: 6월 3일



근래 한국에 보수정권이 집권하면서, 기성 사회 내부의 민족주의적 정서와 대립각을 세우는 모습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 가령 윤석열의 연설문에서 3.1 운동이나 광복절과 같은, 기존에 민족주의적 입장에서 이해되었던 사건들을 '자유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과정적 사건으로 표현하거나, 육사의 홍범도 동상 철거와 같이, 좌익 전력이 있는 민족해방운동가들을 한국사로부터 배제하려는 시도, 최근에는 친여당인사의 광화문에 있는 이순신, 세종대왕 같은 '조선시대' 인물들을 한국사와 무관한 것으로 파악하는 발언 등이 그 대표적인 사례라 하겠다.


현대 보수세력의 이러한 인식에는, '대한민국' 이라는 국가체제를 전근대적인 민족사로부터 이탈한, 미국과 같은 완전히 새로운 근대적 정치체제로 정립하고, 대한민국의 정당성의 근거를 '민족사적 정통성'이 아닌, 진보와 발전사관에 입각한 '자유민주주의의 필연성'에 비추어 사고하려는 욕망이 자리잡고 있다. 소위 말하는 '뉴라이트 사관', 다시 말하면 인류의 역사는 서구의 자유주의나 시장경제를 향해 단선적으로 발전하며, 전근대적 가치나 공산주의와 같은 '전체주의' 이데올로기는 이 과정에서 소멸한다는, 그리하여 대한민국을 진보와 발전의 최종적 종착지로 자리매김하고자 하는 시도가, 최근에 일어난 연이은 사건들의 이념적 배경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이데올로기는, 그들의 경제적, 정치적 기득권을 수호하기 위한 하나의 현실적인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대중의 뇌리에 각인된 민족주의 정서를 해체함으로써, 민주당을 비롯한 반일 민족주의 세력을 비판하고, 주체사상을 국가이념으로 옹립한 북한에 대한 우위를 점하는 한편으로, 현대 대한민국과 글로벌리즘적 세계질서에 대한 비판이나 반발을 잠재우는 일석 삼조의 효과를 기대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과정은 과거의 역사적 사건에 대한 선택적 기억과 배제를 근간으로 하며, 자신들의 입장만을 '우익'의 정통으로 옹립하는 과정에서 과거에 실제로 존재했던 '우익'의 사고와 실천은 망각된다. 마치 CIA의 문화자유회의를 연상시키는 이름의 모 단체의 대표가 '조선조 인물로 가득한 광화문에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는다면 우파가 아니라는' 식의 발언을 한 것은, 그들이 숭배하는 박정희가 열정적인 이순신숭배자이며, 광화문의 이순신 동상에 자금을 지원했다는 사실 앞에 자가당착으로 귀결될 수 밖에 없다.


문제는 이러한 일련의 사태들이 반복되고, 이들이 '우익'을 참칭하며 역사를 다시쓰려는 과정에서, 실제로 우익을 자처하는 이들의 집단기억 또한 변화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거리에서 태극기를 흔들던 보수 노인들은 박정희시대의 산물이지만,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드는 그들에게 있어 유신시기 박정희가 '한국적 민주주의'를 주장하며 자주국방 정책을 추진했다는 것, 그 과정에서 발생한 미국과의 대립 등의 사실은, 그 자신들이 그 역사의 현장을 거쳐왔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망각된 것처럼 보인다. 자신만의 '언어'를 가지지 못하는 광범위한 대중은, 소수 엘리트가 자기 필요에 따라 재구성하는 언어의 구속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자연스럽게 그들이 과거에 가졌던 기억은, 엘리트에 의해 취사되고 선별되어 만들어진 또다른 집단기억으로 대체된다. 80년대까지만 해도 생소하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사관을 대다수 '우익'이 무리없이 받아들이는 것은 이와 관련있다.


그렇다면 여기에 있어서, 소수 엘리트와는 다른 입장에서, 언어를 가진 이들이 실현해야 할 역사적 책임이란 무엇인가? 단순히 저들이 만든 집단기억을 해체하고 과거의 집단기억을 복원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 뿐더러 유의미한 일도 아니다. 필요한 것은, 저들과 같은 기득권의 상황논리와 이해관계에 입각한 정당성 만들기가 아니라, 특정 당파의 상황적 이익을 초월해 민족사를 통해 면면히 흘러온 선조의 사상과 신념을 파악하고, 그 원리와 원칙을 현대의 시대적 과제에 맞게 되살리는, 새로운 집단기억을 창출하는 것이다. 과거를 살았던 선배의 이념과 오늘을 사는 우리의 현실적 필요를 하나로 통합한 민족사관이라는 문제가 제기되는 것이다.


한국의 우익은 저들이 말하는 것과 같은 자유민주주의자도, 시장경제론자도 아니었다. 오히려, 해방 이후 한국의 우익은 김동리가 지적하듯 민족해방, 미소의 식민화 반대, 주요 산업시설의 국유화와 부의 균등분대라는 의제를 좌익과 공유하고 있었으며, 그러한 한에서 한국의 우익은 민족주의적이며 또한 반제국주의적이며, 더 나아가 사회주의에도 우호적인 존재였다.1) 우익이 좌익과 달라지는 지점은, 좌익이 맑스의 유물사관을 통해 경제적 계급관계로 민족공동체를 환원시켰던 반면, 그래서 계급투쟁의 필연성을 말했던 반면, 우익은 '오천년 조선의 얼'에 의한 정신주의를 말했다는 점이다. 한민족은 단군 이래 하나의 핏줄과 하나의 문화로 연결되어 있으므로, 계급대립은 계급투쟁없이 종식될 수 있으며, 노동자와 고용주는 민족 본래의 인륜성, 도의적 관계에 의해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우익의 관점이었다.


자본가와 노동자가 '노동력을 상품시하는 계급적 사고관'을 벗어버리고, '일대 노동공동체'로서 생산 협동체가 된다면 계급투쟁은 필요없다는 논리였다.2) 특히 순정우익을 자처한 안재홍과 같은 인물에게 역사를 발전시키는 힘은 계급투쟁이 아니라, 홍익인간의 사상 등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인간의 '도의적 충동'이며, 3) '근대국가'와 구분되는 새로운 형태의 '현대국가'는 무릇 법질서의 유지를 넘어 적극적으로 도의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안되었다.4) 철학자 김기석에게 있어, 이러한 국가는 공리주의에 입각한 '구라파 사상'인 자유주의를 배격하는 것은 물론, 유물론적 공리주의의 극단인 공산주의 비판으로 귀결된다. 공리주의를 넘어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를 정죄하는 의(義)의 사상"을 실현하는 것이 한민족의 사명이라는 것이다. 5) 특히 이런 우익의 입장에서 공산주의자들은 부모도 모르고 형제도 모르는 비인간적 존재로 형상화된다. 오늘날 보수세력이 주장하는 것처럼 근대주의적 자유주의가 반공운동의 맹아가 아니라, 오히려 서구의 근대주의에 비판적인 이러한 관점이 이들의 반공주의를 정당화하는 사상적 근거가 된 것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사회계약론적 세계관에 입각한 서구식 국가관은 일소되고, 공동체의 구성원들을 혈통과 인격에 근거한 통합체로 이해하는 가족주의적 국가관이 대두한다. 김두헌은 민족공동체란 혈연, 문화의 공동체일뿐 아니라 운명의 공동체이고, 그 공동체의 최고형태는 바로 가족국가적인 도의적 국가라고 주장했다. 전국민이 하나의 가족으로서, 일부 개인이나 개별 요소로 환원되지 않는 '국민적 총의'에 입각한 정치를 실현해 나아가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라면, 이들의 가족국가론, 도의국가론은 결코 현대 민주정치와 모순되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서구 근대문명의 국가관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실천적으로 이들의 이데올로기가 조합국가 건설을 지향하는 국가프로젝트로 수렴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47년도 과도정부 시기 문교부에서 추진한 '신생활운동'은, 국민의 의식과 생활구조 전반을 변혁하여 '도의적 공동체'를 건설하기 위한 계획의 첫 단추였다. 이것은 전근대적인 풍습에 젖어있는 다수 민중을 근대적 국민으로 변화시키려는 계획이라는 점에서 근대주의적이지만, 동시에 그것을 통해 실현하려는 국가가 서구적 자유주의 질서가 아닌, 가족관계의 유비를 통해 드러나는 협동적 사회질서라는 점에서는 반서구주의와 연결될 수 있는 것이었다.6) 이런 우익의 관점은 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도 계속된다. 당시 국무총리였던 이범석이 시정연설에서 대한민국을 '도의국가'로 규정했을 뿐 아니라, 49년 여순사건 이후 대한민국의 국시로 자리잡은 일민주의는 노골적으로 서구의 자본주의와 동구의 공산주의를 '위선국가'로 부정하며, 일민주의 국가는 진정국가로서 기존의 계급관계를 부정하고 만민이 공생하는 협동적 질서로의 전환을 추구한다고 주장한다. 서구의 자본주의도 동구의 공산주의도 아닌 제3의 질서를 창출할 '세계사적 사명'을 가진 국가로서 대한민국은 스스로를 표상했고, 거기에서 민족사적 정당성을 확인하려고 한 것이다. 여기서도, 서구의 자유주의나 공산주의 비판의 초점은 그 물질주의적 성격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며, 그 대안 또한 도의국가로서 대한민국의 국체에 연원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7) 이런 입장은 본질적으로 서구적 자유민주주의나 시장경제론과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이, 상식을 가진 인물의 판단일 것이다.


물론 한국 우익의 이러한 입장은, 한국전쟁 휴전을 전후하여 주류 담론에서 사라진다. 그러나 사상적으로 박종홍과 그의 제자 김형효, (말년에 뉴라이트로 활동했던) 한승조와 같은 인물들에 의해 80년대까지 이 사상의 계보가 순치된 형태로나마 이어져왔던 것은, 그리고 이들의 이념이 10월 유신과 같은 정치적 실천에 수렴했던 것은, 40년대 원형을 형성한 한국 우익의 세계관이 80년대까지 시의성을 가지고 계승되어 왔다는 것을 시사한다. 특히 유신체제가 '권력의 인격화'에 따른 지도자의 '도의정치' 구현을 그 목표로 내세웠던 것, 그가 한국적 민주주의의 뿌리를 민족 전통의 민본주의에서 찾았던 것이나, 70년대 후반 퇴계나 율곡과 같은 전통 유학자들이 재평가되며, 국민일반이 갖춰야 할 덕목으로 '충효사상'이 강조되었던 것 등은, 서구의 문명을 수용하되 민족본연의 도의적 가치에 입각해야 한다는 구한말의 동도서기론이, 일본의 근대초극론, 해방 후의 도의국가론 등을 경유해 계승된 한국 보수주의의 뿌리깊은 계보를 형성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혹자는 이들의 이념이 과거에는 의미가 있을지 몰라도, 오늘의 현실에는 무의미한 것이 아닌가, 이런 이들의 '원형'을 굳이 찾아보는 의미가 있는가, 물을 수 있다. 그러나 뉴라이트가 자가당착에 빠지면서도 이들의 유산을 굳이 찾아내어 박멸하려는 시도를 거듭한다는 사실 자체가, 이들의 유산이 여전히 현대에도 유의미하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뉴라이트의 상당수가 전향 좌익 출신이라는 것을 우리는 여기서 다시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소련방 붕괴와 북한의 경제침체로 사회주의에 대한 희망을 잃어버린 이 유물론적 공산주의자들이, 자기가 가지고 있었던 세계관의 '자유주의적 판본'을 들고 우익세력에 침투해 근대주의적, 물질주의적 사관을 선전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이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 것일까? 이들은 겉보기에 '좌익'을 공격하는 것 같지만, 그들이 파괴하고 있는 것은, 민족 본래의 도의를 무기로 서구 근대주의에 대항했던 우익의 본래적 가치체계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최악의 '좌익 스파이'는 다름아닌 현대 '우파' 자기 자신이라고 강조해도 그것이 과연 과장인가?


1) "조선에 있어서의 좌우익이란 도대체 어떠한 역사적 근거에서 지칭되는 것인가? 만약 토지개혁과 주요기업의 국유를 주장하는 것이 좌익이라면 조선사람은 전부가 좌익이요, 민족해방과 완전독립을 갈망하는 것이 우익이라면 조선사람은 전부가 우익일 것이다. 조선의 소연방화소련방화거부를 우익이라면 우리는 모다 우익이어야 할 것이고 조선의 미국식민지의 배격을 좌익이라면 우리는 모다 좌익일 것이다." (김동리, 「좌우간의 좌우」, 『백민』 2-4, 백민문화사, 1946, 20~22쪽)


2) "우선 해방 이후부터 강조되던 '노자협조'는 계급 갈등 자체를 부정함은 물론, 자본주의적 계급 관계 역시 거부했다. 이는 특히 조선민족청년단과 대한노총, 국민회 출신 정치 세력에 의해 주도되었는데, 그들이 정의하는 '진정한 노자 협조'란, 노동력을 상품시하는 계급적 사고관은 벗어버리고 '국민 전체가 개로(皆勞)하는 일대 노동공동체'로서 기업가와 노동자가 생산 협동체가 되는 것이었다. 이 속에서 노동자의 적은 자본가가 아니라 구(舊) 자본주의 정신을 가지고 착취성과 불로이득을 챙기려는 자들로 규정된다." (이정은, <1950년대 노동지배담론과 노동자의 대응>, 17p)


3) "역사 발전의 이면에 잠긴 불멸의 구원성이 있나니 전시대를 통하여 항상 최선 또 최대한 바로 잡아 구제하려 의도를 파지케 하는 인류의 도의적 충동 그것이요, 이를 만일 단군을 통하여 본다면 곧 홍익인간의 큰 서원인 것이다.”(안재홍, 「단군과 개천절」, 조선일보 1935년 10월 29일)


4) "도의국가론 은 당대 남한 엘리트들 사이에서 적지 않게 공유되던 국가론 이었다. 예컨대 전봉덕은 현대국가의 임무가 도의의 현현과 실현에 있으며 이것이 국가의 임무를 법질서 유지에 국한하는 근대국가와 현대국가 의 준별점이라고 주장한다." (임종명, <해방공간과 신생활운동>, 24p)


5) "...당시 현상공모전에서 당선된 표어 <서로돕는 상조마을에 빛나는 새살림> 은 주목할 만하다. 이러한 것들은 과도정부의 신생활운동이 인보 상조 라는 도의적 관점 에 입각해서 마을을 재정의 표상 하면서 그것을 신생활과 연결시키고 또한 그러한 관점에서 지방의 말단지배조직까지 도의적 공동체로 재조직하고자 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와 같이 신생활운동은 도의 공동체 건설을 지향하면서 공동체를 재조직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임종명, <해방공간과 신생활운동>, 33p)


6) "철학자 김기석은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를 비판하면서 새로운 인간형과 지도이념의 창조를 강조하였다. (...) 전쟁을 극복하는 것은 전 세계가 서구식 공리주의를 뛰어넘어, 의의 세계로 나아갈 데 가능하다고 본다. 그런데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를 함께 정죄하는 의(義)의 사상이 한국전란을 통하여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김성보, <전후 한국 반공주의의 균열과 전환>, 7p)


7) "...물질적 이해관계를 사회 존립의 기초로 삼기 때문에,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는 극단의 대립 속에서 심한 갈등과 마찰을 빚어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십세기는 이 알륵과 싸움에 몹시 시달리고 있어서, 새로운 세계관과 새로운 철학을 요망하고 있다. 그러면 이러한 세계사적 요망을 달성할 수 있는 자는 누구냐? 그것은 오직 신생 대한민국임을 자부할 수 있는 것이다." (이범석, <이대통령 건국정치이념> 추천사, 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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