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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충성 김

조명기 - 총화(總和)의 불교적 이해

최종 수정일: 2월 20일




문화라든지 사상이라는 것은 그 성격상 원근법적(遠近法的) 특질을 가지고 있으며 수많은 계기를 내포하고 있다. 상황에의 다채적인 적합성을 가지고 있는 고로, 문화의 사상은 상황과 시대를 완성하게 하는 보완물이 되어 나타나는 것이나, 실제로는 주체적 지도역할을 자부하게 되는 것이다.그러면 그 문화·사상의 의미를 묻고 그 마음을 되새기는 일이 현대의 절실한 요구일 것이다. 서양문물은 궁지에 빠졌기 때문에, 최근 서양화된 것으로부터 탈피하려는 경향이 나타났고, 동양인 본래의 행동양식이 높이 평가되어왔다. 우리는 이 근원이 되는 가치의식의 모체를 자기의 내부에서 탐색하고자 한다.

한국에 불교를 수립시킨 사람이 원효대사인데, 그는 불교사상을 보편타당성있게 건립하는 동시에 우리 민족성의 주체적 역할을 담당하도록 창도(創導)했고, 여기에 원효사상(元曉思想)의 원형(原型)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왜냐하면, 동질성의 종교나 문화라는 것은 동일한 테두리에 수용되는 것이지만, 그의 형(型)을 지키는 주체는 민족일 것이다. 그것은 민족이 가진 자율성과 창의성의 기조없이는 생육(生育)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원효가 일야(一夜) 총간(塚間)에서 깨달은 것은 ‘내 마음이 평안(平安)하면 우주가 안정하고, 내 마음이 불안하면 우주가 파괴된다’는 것이다. 마음의 안(安)과 불안은 자기가 자작하는 것이 타(他)에 의한 인과(因果)는 초탈(超脫)되어있다. 그러므로 마음을 정립하기 위하여 노력·정진하여야 한다. 이 정진이 인생의 유일한 임무이니 정진없는 타태(惰怠)는 파멸이 있을 뿐이고 정진은 인생의 근본인 동시에 우주의 생명이다. 우주의 태양계 등도 추호의 어김없이 영구히 운동하고 있고, 기타 만물도 시(時)와 처(處)를 알아 정진하고 있다. 결국은 찰나(刹那)의 정진으로 영구히 성립되는 것이니, 찰나 즉 영구(永久)이고 영구 즉 생명이다.


이것은 법화경에서 설(說)해진 붓다의 가르침이기도 하지마는, 우리나라의 민족적 상황과 문화적 계기에 적절하게 파악하여, 총화문화(總和文化)를 건설할 업적을 나타내게 한 것은 원효(元曉)의 학설이다.


또다시 예를 들어보면, 불교가 항상 말하는 ‘유(有)’와 ‘공(空)’이라는 것은 대립되는 개념이지만, 물(物)의 존재방법으로서 ‘유(有)를 싫어하고 공(空)을 좋아한다’는 것은 마치 개개(個個)의 수목(樹木)을 버리고 삼림(森林)을 찾는 것과 같은 것이다. 가령 청(靑)과 람(藍)은 동체(同體)이고, 영(永)과 수(水)는 동원(同源)이란 것이 다르게 되어 있다고 이해하여도 좋을는지.


본체론 (本體論)의 견해에 의해 말하면 만물이 일(一)로써 화(和)되는 상태를 총화(總和)라고 말할 수 있다. 일보(一步) 나아가서 종합적 관점에서 보면, 화(和)와 쟁(諍)으로 출현(出現)되는 현상을 지양(止揚)하면 통섭(統攝)되는 총화(總和)가 이루어진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화(和)와 쟁(諍)의 관련성 속에서 활동하는 상황을 포착하는 것을 인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양상(樣相)을 가령 ‘통화운동(統和運動)’이라고 말해보면, 이 통화운동만이 불교인식론의 원점이라고 하여도 좋을 것이다. 원효의 사상의 근본은 바로 이점에 있는 것이다.


원효는 인간사회에 화(和)와 쟁(諍)의 이면성을 가정한다. 그러나 화(和)라는 것은 실체적인 것이 아니고, 기능적인 이해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이 화(和)를 문법적으로 예를 들면, 그것은 명사와 같은 것도 아니고 형용사적인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동사와 같은 것과도 역시 아닌 것이다. 이것은 적극적이고 능력적으로 영구히 연동(連動) 전화(轉化)하고 있는 것, 다시 말하면 정진하고 있는 진행형과 같은 것이다. 쟁(諍)도 같은 논리 (論理)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화(和)와 쟁(諍)은 대립하는 것으로서 나타나게 하여두고, 원효는 화(和)의 극치에 달하면 쟁(諍)도 화(和)에 동화(同化)하게 되는 것이라고 알았다. 화(和)는 쟁(諍)을 부정하면서 인식하고, 쟁(諍)은 화(和)를 긍정하면서 각립하는 것은 결국은 화(和)로서 통괄하게 되는 것이다. 즉 화(和)와 쟁(諍)의 관계로서는 찬(贊)과 반(反)이 있게 될 것이나, 종극적으로는 연계선을 그리고 쌍방이 합력(合力)하는 작용이 행해져서, 여기에 대생명이 육성되고 우주는 무궁히 운행되어 만유는 통화되고 운동되는 것이다.


이 원리를 민족과 국토의 상황과 계기(契機)에 따르게 하면, 고대 삼국통일의 기본이론도 이것을 신앙적으로 선용하였고, 여말(契機) 후삼국을 또 다시 통합하고 고려의 창건과 국태민안(國泰民安)의 밑바탕의 이념적 근저로 되었고, 또한 이 원효의 통화(統和)를 대각국사가 상기(想起)하여 국가사상의 기반(基盤)에 고정(固定)하기로 했다. 이와 같은 화(和)의 정진을 ‘통화(統和)’라고 한 것은, 우주만물이 화(和)에 향하는 정진이요, 원효(元曉)가 말한 것처럼, 쟁(諍)을 전제 또는 추인(推認)함으로써 화(和)를 성립(成立)시키는 것이 아니고, 무자적적(無自的的)인 화(和)에 대한 상념(想念)을 무한정(無限定)으로 계속 노력하는 정진이 곧 화(和)일 것이다.


원효는 화(和)와 쟁(諍)의 정(正)과 반(反)으로서 합일(合一)을 구하는 것이 아니고 화(和)와 쟁(諍)에 대한 무분별적 정진으로써 통일(統一)을 원하는 것이다. 화(和)가 쟁(諍)을 함탄(含呑)하는 것도 아니고, 쟁(諍)이 화(和)에 몰입(沒入)되는 것도 아니니, 쟁(諍)과 화(和)가 본래(本來)무(無)의 견지에서 자동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곧 화(和)이다. 이것을 불교에서 역(逆)으로 말하여 ‘양개니우투입해(兩個泥牛鬪入海)’라고 한다.


이와 같은 사상으로서 불교 보급에 강한 영향을 준 이는 원효(617)~(686)이다. 사(師)는독자적연독에 의하여 전 불교를 일리(一理)에 귀납(歸納)코자 시도하였다. 당시 특권계급에 속한 고승인 원효(元曉)는 자기의 태도를 국내의 사상통일과 사회의 화평에 공헌하고자 하였다. 만년에는 법의(法衣)를 벗어버리고 환속(還俗)하여, 민중의 저변에 뛰어들어 항간에서 가무하고 주도에서 담소하여, 만인의 실생활에서 화락(和樂)을 보이기도 했다. 이것이 모두 일관된 불교의 화평 이념에서 나온 실태이며 방법이다.


원효는 불교에 있어서 우주관과 국가관이 어떤 연관성을 가진 것인가에 대하여서는, 우주 즉 인생이라는 실감으로써 이해시켰다. 통화(統和)된 우주(宇宙)가 실제로는 그대로가 국가(國家)라고 규정하고 있다. 우리가 진실한 생활을 하고 있다면 이런 현실은 인식하게 될 것이다. 그 진실한 생활이란 인간에게 있어 영원한 것이니 붓다도 이것을 구명하려고 노력한 것이다.


인간 곧 자기라는 그의 체물(體物)과 정신에도 우주의 진리 그대로가 통화되고 운동되어 있는 것을 감각할 때에, 자기 자신과 우주가 일체화되고 살아있는 자태를 감지하게 된다. 동시에 사회전반의 정황에 의해서 육성되고 있는 자기 자신을 감득(感得)할 것이다. 이 각성의식(覺醒意識)에 의하여 우리는 비로소 감격(感激)과 환희를 체득하고 확고한 신념을 가지게 될 것이다.


만유를 평면적으로 하나하나 늘어놓고 이것을 취사선택하는 것이 아니고, 종합적 입체적으로 보고 그의 실상을 인식(認識)하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개개에 대하여 그 위치의 고저(高低)와 가치의 판단을 행할 필요가 없게 되고 적나라하게 나타나 있으니 절대 평등일 것이다. 따라서 개개의 존재가치가 나타나서도 일리(一理)에 통화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주어진 명제인 ‘총화의 불교적 이해’보다 ‘불교의 총화적 이해’를 제창한 원효대사는 한국불교의 민족적 정착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고 통화사상(統和思想)에 현대적 의미를 일찍 부여했으므로 오늘에 와서도 위대한 성적(聖績)이라고 찬양하지 않을 수 없다.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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