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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사상과 무인정신

  • 작성자 사진: 충성 김
    충성 김
  • 2월 10일
  • 3분 분량

20세기 한국의 수많은 철학자들은 식민지배와 연이은 분단, 경제적 빈곤과 문화적 단절 속에 주어진 '현실'을 우리 자신의 힘으로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를 자기 철학의 화두로 삼았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철학을 전개하였던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열암 박종홍이다. 그는 자신의 철학이 가진 의미와 목적을 무엇보다 현실을 중심삼고 현실 속에서 살아있는 진리를 찾는 것에 두었다. 그에게 있어서는 무엇보다 자신이 처한 구체적 현실 속에서 자신의 동포, 그리고 민족공동체가 어떻게 생존할 수 있고 번영할 수 있을지가 그 당면한 과제였다고 할 수 있다. 그가 민족의 역사와 전통에 관심을 기울인 것도, 호사가적인 복고취미에서 기인한 것보다도, 지금 우리가 처한 이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단초를 "조상의 빛난 얼"에서 구하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박종홍에 따르면 현대를 지배하고 있는 서구세계의 철학은 실존주의와 실용주의, 맑시즘으로 구분된다고 말한다. 여기서 실존주의가 "자신의 존재를 자각하며 존재하는" 즉 개인 내면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면, 실용주의나 맑시즘은 인간이 실천적 삶에서 어떻게 생활할 것인가 하는, 외면적인 행위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전자가 그런 의미에서 향내적 철학이라면 후자는 향외적 철학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박종홍이 우려하는 것은 이 철학계의 두 경향이 서로 평행선을 달리고 있을 뿐 도무지 양자가 종합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개인의 내면과 그가 활동하는 외부의 세계, 그 모든 것은 사회적 존재로서 인간이 당면한 현실의 두가지 모습일 뿐이다. 음과 양이 하나로 통일되는 것과 같이 내면과 외면 또한 철학적으로 종합되지 않으면 안된다.


박종홍은 우리 겨레가 추구해 왔던 유교적 생활철학에서 이러한 문제에 대한 대안을 찾는다. 유교의 생활태도는 서구의 그것과 달리 외부의 초월적 실제세계를 상정하고 그것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회 속에서 현실 속에서 영위되는 인간의 실천 속에 도(道)가 있다고 보는 것이 유교의 생활철학이다. 박종홍은 이러한 사고는 단순히 유학적 사고 이전에 한국인의 의식 속에 면면이 흘러내려온 민족적 사고의 구현이라고 본다. 이러한 사고가 한국인이 유학을 받아들이는데 있어 중요한 조건으로 작용하였으며, 우리 민족이 중국의 성리학을 독창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민족적 사고의 결과라고 보는 것이다.


인간이 생존하고 생활하기 위해서는 내면의 양심도 필요하고, 외면의 기술도 필요하다. 내면의 양심과 외면의 기술이 상극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민족적 생활공동체 안에서의 "절대적 행동"에 의해 종합되고 지양되는 것, 거기에서 건설과 창조가 이룩된다고 열암은 보았던 것이다. 열암이 천도교의 인내천 사상을 높이 평가하였던 것도, 천도교 사상이 인간의 사회적 실천과 내면의 수양을 별개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있어서 내 동포와 동귀일체하는 길, 더불어 사는 길에 도가 있고 또 도를 닦는 것도 내 동포와 더불어 지상천국을 이룩하는데 그 뜻이 있는 것이다.


열암에게 있어서는 사회에서 실천하며 기술을 연마하고 그것을 구현하는 행위 일체는 그 자체로 도를 실천하는 하나의 과정으로 연결된다. 그렇게 본다면 글을 쓰는 사람은 글로써 도를 닦는 것이요, 건설현장의 노동자는 벽돌을 쌓으며 도를 닦는 것이요, 또 전방의 군인은 총을 들고서 도를 연마하는 것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한 철학을 무예로서 다지려고 한 것이 바로 한국의 무술인 "정도술"이 아닌가 한다.


정도술에 있어서 "정(正)"은 하늘의 섭리를, "도(道)"는 땅의 온기를, "술(術)"은 만물의 약동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여기에서 드러나는 것은 한민족이 고대로부터 가져온 하늘과 땅과 인간의 일원론적인 융합의 사상이다. 여기서 인간이 가야할 바른 길인 "정도"와 인간이 실천해야 할 기술인 "술"은 모순없이 하나로 결합된다. 정도술의 철학은 일면에 있어서 향내적이고 또 일면에 있어서 향외적이기도 하다. 그것은 도를 가르치는 종교적 의미가 있지만 그 종교적 의미는 신체를 움직이는 활동인 무술과 별개의 것이 아니다. 내가 사회 속에서 나의 몸과 행위로서 도를 드러내고 또 실천한다는 것이 곧 정도술의 철학인 것이다. 정도술의 기본은 무술 즉 적과의 투쟁에서 승리하는 것을 가르치지만, 그것이 최종적으로 도달하는 것이 "대명술", 즉 도와 술을 한 인격 안에 구현한 "도인"의 경지라는 것은, 사회적 의미와 종교적 의미가 분리되지 않은 정도술 철학의 구현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마치 <바가바드기타>에서, 신의 모습이 현현한 위대한 현자가 지혜를 구하는 왕자에게 자신이 직면한 전장에서 물러남이 없이 진리를 깨달으라 일갈한 것과 마찬가지로, 정도술의 이념 또한 인간의 육체와 투쟁을 부정함이 없이 오히려 그것을 통해서 도를 이루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정신과 육체는 하나, 내적 자각과 사회적 실천은 하나라는 바로 이 이념에 있어서 우리 겨레는 고구려의 조백도, 신라 화랑도의 정신을 꽃피울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구한말의 동학과 같은 개벽사상의 등장도 바로 이러한 민족사상과 결코 다른 것이 아니라하고 하겠다. 이미 신시시대에 환인이 환웅에게 주술적 힘을 뜻하는 방울과 자신을 성찰하는 거울, 권위와 정복의 상징인 칼을 함께 주었을때 환웅이 제시한 홍익인간의 이념에 이러한 대도가 내재되었든 것이다.


오늘날 민족운동의 청년들이 이 정도술을 수련하고 있는 것은, 홍익인간 이념과 고구려의 조의선인, 신라 화랑도가 가졌던 영과 육의 일체성 바로 그것을 체험하기 위한 과정에 다름이 아니다. 바로 이 정도술을 수련하는 과정 자체가 우리의 민족사상을 단순한 관념과 머리가 아닌 몸으로서 체험하는 바로 그것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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