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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규 - 동학혁명의 의의

  • 작성자 사진: 충성 김
    충성 김
  • 2024년 12월 29일
  • 2분 분량



동학은 그것이 사상이든 민족운동이든 그 의미가 반드시 민족사 위에서 평가되어야 한다. 동학은 한마디로 국가적 측면에서 기울어지던 역사를 민족적 측면에서 회복시키려하였던 역사의식의 표현이었다.


조선왕조말기 한민족이 극복해야했던 역사적 모순은 밖으로부터 밀려오는 침략이란 대외적 모순과 조선조 안에서 쌓여왔던 대내적 모순이라는 역사의 무거운 이중부담이었다. 그것이 바로 반제국, 반봉건이라는 동학 민중운동의 획득목표로 집약되어 나왔다.


이런 점에서 동학은 자립과 진보라는 역사의 두 기능을 함께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그 이전에 민족사 위에서, 주로 밀려오는 외세 앞에서 저항하였던 척사사상의 자립성과 그리고 조선조안에 쌓여온 모순을 개혁하며 밖으로 뻗어나가려던 개화운동의 진보성을 함께 결합시키는 역사의 발전이었다.


물론 같은 저항을 하였다 하여도 척사 사상과 동학 사상의 사상적 존재형태가 반드시 같은 것은 아니었고 또 다같이 개혁을 밀고 나왔어도 개화운동의 인맥과 동학운동의 중심세력이 반드시 하나로 연결되고 있지는 않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학은 여전히 우리에게 자주와 진보를 함께 밝혀준 민족운동 내지 민족주의 사상으로 엄연히 확인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역사에서 한 역사적인 사건이 끼친 민족사적 활력이 무엇이며 그것이 담당한 민족사적 기능이 무엇이었나를 주로 찾아내는 민족사적 방법으로서 동학에 대한 재평가인 것이다.


이 같이 역사의 주체를 국가라는 측면에서보다는 민족이라는 측면에서 강조하고 또 역사의 내용을 과거의 사실로서보다는 오늘에 재창조되는 활력으로서 파악하며 항상 역사의 기능과 의의를 긴 민족사 위에 올려놓고 정리하는 민족사적 방법을 전제로하지 않을때 동학에 대한 평가는 물론 달라질 수도 있다.


그것은 아무리 정확한 사료와 내용을 가지고도 마찬가지다.


즉 조선조 기존체제 위에 서있건 국가적 측면에서건 동학은 분명 관료체제에 도전하는 「반란」이었고 또 그것을 진압한다는 명목으로 온 침략세력에게는 한낱 「동비(東匪)」에 불과했다. 뿐만 아니라 외세에 대한 같은 저항세력이었지만 전통적 유교이념 위에서 사림 신분으로 제국주의에 대항했던 척사상에서 보았을때 동학사상에서는 선뜻 이단적 요소가 발견되었고, 또한 같은 개혁운동이었지만 기존 관료인테리를 중심으로 하는 개화당 세력은 농민 속에 확산된 동학민족운동을 직접 인도하지 못하는 제약을 스스로 안고 있었다.


여기서 "동학은 초기에 반란이었고 그것은 또 침략세력을 끌어들였으며 거기에서는 뒤에 자각에 의한 민족운동의 한줄기가 나왔었지만 그러나 이미 때가 늦어 실패하고 말았다."는 지극히 단순한 주장이 나을 수 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동학에 대한 일면의 「설명」은 분명히 될 수 있을지언정 동학에 대한 정당한 「평가」는 결코 아닌 것이다. 그것은 역사를 있었던 사실로만 보는 유치한 생각에 머무른 단견에 불과하다.


우리는 여기서 민족사적인 동학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위하여 한민족의 탄생에 해당하는 민족통일(삼국통일)이라는 계기와 한민족의 근대적 재탄생을 의미하는 삼일 민족대운동의 계기를 주목해야 한다.


삼국통일의 역사도 초기에는 삼국의 군사적 외교적 대립에서 나온 지배자의 정복전쟁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외교적 교섭결과 거기에는 당이라는 외세까지도 끼여들었다. 그러나 그것이 국가적 통일을 이루고 다시 당 세력을 몰아내는 민족적 통일로까지 발전하였을때 그것은 민족의 결정이라는 위대한 민족사의 활력을 쌓았던 것이다. 또한 삼일 민족대운동은 그것이 목표로 한 민족의 자주와 국가적 독립을 즉시 이루지 못함으로써 일단 현상적으로 실패한 것처럼 보였지만 그러나 그것은 엄연히 이 민족의 근대적 생명력에 대한 재탄생이라는 민족사적 의의를 지니고 있다.


여기서 동학은 그 출발이 비록 반란이나 사회적 소요였다 하여도 그것이 이룩한 역사의 결과, 즉 근대민족주의 운동의 공훈은 민족사 위에 분명하며 또 그것은 반제국, 반봉건이라는 역사적 목표를 즉시 새질서로 이룩하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그것이 오늘의 한민족에 던져주는 재창조의 활력에서 민족근대사의 진정한 한 추진력이었음이 분명한 것이다.


  • 1974.04.25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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