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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충성 김

열암사상 : 한국적 보수혁명의 토대

최종 수정일: 2023년 4월 19일




제1차 대전 이후 서구 지성계에서는, 슈펭글러의 <서구의 몰락>이라는 저작이 시사하듯 유럽 근대문명에 대한 회의론이 팽배했던 것이 사실이다. 특히 패전국인 독일에 있어서 바이마르 공화국의 혼란상을 목도한 일군의 사상가들은, 이를 근대성, 더 나아가 서구문명 그 자체의 위기로 진단하며 보수혁명을 부르짖었던 바, 이는 지켜야 할 것이 없는 아노미 상태에서 독일정신의 원형으로 회귀하여 지켜야 할 상태를 창조하는 사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 동시대 동양의 변방으로 전락한 조선에 있어서는 서구의 극복, 혹은 근대의 극복이라는 문제는 시기상조였던 바, 오히려 당대 조선의 가장 열렬한 국수주의자조차 문명 발전의 원동력으로 서구의 자유주의를 지목하며 자유주의만이 민족과 국가의 미래를 담보할 수 있다고 큰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우리에게 있어 근대의 파산이라는 것이 처음으로 피부에 와 닿는 실질적인 문제로 떠오른 것은 30년대 만주사변, 그리고 전세계를 휩쓸던 추축국의 대두라는 문제에 의한 것이었다.


오늘 소개할 한국의 사상가 열암 박종홍 역시 이러한 시대적 조건 속에서 철학을 공부한 인물이다. 그 누구도 민족의 한치 앞을 진단할 수 없는 어두운 상황, 민족이 총체적 위기에 빠져있는 이른바 「비상시」의 시대적 상황에서 우리 민족은 어떻게 이 위기를 극복할 것인가, 어떻게 우리는 살아날 수 있는가, 이것이 전생애를 걸친 박종홍의 철학적 고뇌였다고 할 수 있다.


비록 2차 대전으로 추축국은 몰락했으나 해방 이후에도 우리의 현실은 위기의 연속이었던 바, 박종홍이 인식한 엄혹한 환경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었다. 서구를 비롯한 외래문명의 무비판적 수용, 공산주의자들의 현존하는 위협, 전쟁, 정치사회적으로 만연한 부패와 폐허가 된 국토, 그리고 그에 더한 만성적 기아와 빈곤까지, 민족의 생명을 위협하는 요소들은 여전히 유령처럼 한반도 위를 배회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문제가 되었던 것은 물론 산업발전과 민주주의, 즉 근대화라는 화두였다. 1950년대 <사상계>를 비롯한 많은 한국의 지식인들은 서구의 자본주의 발전, 즉 영미식 근대에 도달하는 것이 마치 현존하는 위기를 타파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인 것처럼 주장하였으며 근대성에 도전하는 것들, 민족의 전통이라는 것은 야만적이고 벗어버려야 할 불편한 오욕의 역사처럼 여겨졌던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박종홍은 고민한다. 우리는 전통을 그대로 유지할 수도 없고 그것을 버릴 수도 없다. 전통이 없는 민족이란 무엇인가? 자아가 없는 인간이 존재할 수 없는 만큼 전통에서 탈각한 민족이란 살아있는 송장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 그러나 우리는 근대화 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서구의 그것과 다른 우리의 전통을 그대로 보존할 수도 없는 일이 아닌지? 해방 된 한국의 낙후한 현실은 전간기 독일과도, 비슷한 시기 일본과도 다른 것이다. 여기서 민족정체성을 운운한 것은 우리에게 사치가 되는 일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고민 속에서 박종홍은 이른바 한국적 보수혁명사상이라 불릴 만한 주장을 제기한다. 이것은 전통 속에서 변혁의 원리를 찾아내고, 또 그것을 근간으로 역사에 전례없었던 새로운 창조를 도모하는 철학적 원리라고 할 수 있다.


박종홍에게 있어 전통이란 우선 우리 민족이 역사적으로 가졌던 모든 문화나 관습, 가치관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모든 것들을 포괄하는, 그것의 전제조건이 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한국인의 원형적 사상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원형적 사상, 즉 한국인의 역사적 형성과정에서 한국인의 창조적 기질을 발휘할 수 있게 만든 그 사상이야말로 우리가 수호해야 할 전통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전통을 수호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새로운 창조를 지향하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민족전통, 그 자체에 창조성이 내재해 있기 때문이며 그것은 구습에 얽매이지 않고 끊임없이 위기의 상황을 극복하는 투쟁의 원리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종홍은 그 원리를 유학의 천명사상에서 구한다. 천명사상이란 「무로 돌아가 다시 유로 향하는」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늘의 뜻을 자각하는 것을 중요시 하나 하늘이라는 것은 구체적 현실과 유리된 추상적인 것은 아니요, 동학의 인내천(人乃天) 사상이 말하듯 하늘의 뜻은 곧 우리와 호흡을 같이 하는 고달픈 백성의 소리인 것이다. 결국 천명을 자각한다는 것은 사회적 실천과 분리되어 생각할 수 없으며 이를 통해 새로운 가치와 역사를 창조해 나가는 것이다. 이 천명사상을 계승한다는 것은 곧 새로운 창조와 투쟁을 매개로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수하는 것은 곧 혁명하는 것이다. 보존하는 것은 곧 창조하는 것이다. 이 변증법적 원리가 박종홍이 제시한 보수혁명의 사상적 특질이다.


그런 맥락에서, 박종홍에게 있어 과거 신라의 삼국통일과 근대 한국의 3.1운동, 이승만정권을 무너뜨린 4.19학생의거와 같은 역사적 경험은 바로 현실 속에서 민족의 근원이 생생하게 드러나는 사건, 모든 규범이 효력정지된 비상시에 구현된 한국인의 전통적 정신의 회복이요 그 실천적 구현이었던 셈이다. 60년대 5.16 이후 박정희 정권의 조국근대화 프로젝트에 이데올로그 역할을 담당했던 그가 70년대 초반 박정권의 10월 유신을 지지했던 것도 어떤 의미에서는 필연적인 것이었다.


박종홍은 한국의 자유주의 지식인들과 달리 서구적 근대화만이 우리 민족의 살 길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가 2차대전 이전의 세계정세를 관찰하며 보았듯 서구문명이라는 것은 그 자체의 모순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 아닌가? 서구인은 향외적 실천에 집착한 나머지 세계를 파괴하고 있으며 내적 자각없이 물질문명과 황금자본주의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지 않은가? 서구에서 실존주의가 대두했다고는 하나 이것 역시 내적 자각에 집착해 사회적 실천이 결여된 개인주의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닌가? 우리에겐 이러한 향내적 자각과 향외적 실천을 동시에 담보하는 천명사상이라는 위대한 철학적 원리가 있다. 이것으로 우리는 우리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서구 근대문명의 위기 또한 넘어설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보기에 10월 유신은 이러한 자신의 사상적 비전을 정치적으로 구현한 선구적 결단에 다름 아니었다. 그것은 제3공화국이 벗어나지 못했던 서구식 자유주의로부터의 이탈이며, 천명지성, 즉 조국근대화의 사명을 자각한 애국적 지도자와 국민의 총화적 단결에 의해 민족의 미래를 개척해 나가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이었다. 유신이라는 용어 자체가 박종홍의 보수혁명적 사고를 훌륭하게 표현하고 있지 않은가. 고통스러운 현재를 넘어서는 동시에 전통을 회복하는, 즉「조상의 빛난 얼을 현재에 되살리는 것」그리하여 민족의 르네상스를 개척하는 것, 그것을 위해서는 근대화와 동시에 서구적 근대를 넘어서는 「이중작전」이 필요한 것이었고 그는 유신체제에서 그 가능성을 발견한 것이 아니었을까.


이러한 상황에서 자신은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는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박종홍에게 있어 철학자란 존재는 민족의 운명과 무관하게, 골방에서 책이나 파고들며 유유자적하는 부르주아적 인간형이 될 수 없었다. 오히려 민족의 기쁨과 고난을 함께 짊어지고 그들과 같은 삶의 현장에서 싸우고 일하는 것이 철학자의 사명이었다. 그는 자신의 정치참여를, 그러한 사회적 실천의 일부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을 것이다.


참고자료

  1. 김항, <탈근대의 철학, 반근대의 정치 - >

  2. 열암기념사업회, 《현실과 창조》

  3. 이병수, 《열암 박종홍의 철학사상 - 천명사상을 중심으로》

댓글 1개

1 comentário


Yuho
Yuho
19 de jan. de 2023

박종홍 사상의 토대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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