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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충성 김

강상운의 현실인식과 파시즘

최종 수정일: 2023년 4월 17일



민족문제연구회가 민족혁명총서를 편찬하면서 가장 먼저 수집해 배포한 저작이 강상운박사의 <현대정치학개론>이다. 이 책을 저술한 강상운박사는 이조당쟁사 연구로 역사학계에 한 획을 그은 인물이자, 국회도서관장을 역임하는 등 한국 현대사에서 중요한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그러나 그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은 그가 이념적인 면에 있어서 강경한 민족주의자로서 독일과 이탈리아의 파시즘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또 공들여 연구했다는 사실이다. 그가 이러한 자신의 사상적 입장을 서술한 <현대정치학개론>은, 해방 후 한국의 최초의 정치학개론서 중 하나로, 파시즘 일반은 물론 당대 지성계의 흥미로운 단면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귀중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강상운박사는 <현대정치학개론>의 서문에서 그 집필의도를 밝히고 있는 바, 여기에서 그의 민족주의적 문제의식이 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는 오늘날 한민족의 과제는 남북조선을 아우르는 통일된 자주독립국가의 건설이라고 전제한 뒤, 이를 위해서 필요한 것은 국제적 협조 이전에 언어와 혈통과 토지와 관습 등을 같이 하는 동족의 협조가 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에 있어서 격렬한 좌우대립과 함께 사회혼란이 가속화되고 있는 것은, 주체성 없이 수용된 외부의 주의 주장이 피상적으로 이해되고 선전되어 사회분열을 조장하고 있는 것이 한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좋은 「좋은 정치상의 이상과 주의를 흡수하고 채용한다는 것은 이를 흡수하고 채용하는 주체의 존재를 필요로 하는 것이며 주체의 존재를 부인하는 사상과 주의는 곧 정신적인 침략」에 지나지 않았다. 좌익과 우익을 모두 상대화하며 민족주의적인 정치노선을 모색하는 그의 이러한 관점은 자유주의나 공산주의보다 제3의 위치에 보다 호의적인 것이었다.


여기에서 그는 현대의 정치이념을 1) 자유민주적 정치관념, 2)맑시스트적 정치관념, 3)민족주의적 전체주의적 정치관념으로 구분하고 있는데, 그는 이러한 정치관념의 형성과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18세기 군주정치에 반대해 나타난 개인주의는 개인의 행복과 권리를 우선시하는 것이었으나, 이러한 자유주의 사상은 경제적 자유주의와 침략의 자유주의를 낳아 빈부격차와 향락주의에 의해 자유주의는 막다른 골목에 몰리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평등주의가 대두하는데, 이것은 국민 모두에게 부를 획득할 평등한 기회를 보장하는 것이지만, 「병을 치료할 권리가 부여되었다 하여도 병이 치료되지 않은 것」과 같이, 이러한 형식적인 평등주의는 자유주의의 문제를 해소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결국에 강제적 재산분배를 추구하는 사회주의가 나타나고, 이것이 부르조아 계급과 프로레타리아 계급의 관계를 전도하여 무산자독재를 부르짖는 공산주의 정치관념으로 이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산주의에 반대하며 또 구 자본주의에 반대하여 개인주의의 막다른 골목인 공산주의를 극복하기 위하여」새롭게 일어난 것이 바로 파시즘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파시즘은 「구자유를 파괴하고 신자유를 건설하기 위하여」 반드시 일어나야 할 정치현상으로서 긍정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파시즘은 개인주의의 막다른 골목에서 일어난 것으로, 이것은 국가주의의 일종이나, 이는 종래의 국가주의와 다르게 국가의 구성요소인「권력, 국토, 인민」의 3자 중에서 권력기구에 중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인민, 즉 국민에게 중심을 두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즉 부르주아든 프롤레타리아이든, 혹은 특정한 개인이나 당파든 국가 내부의 일계급, 혹은 일개인의 특권을 배격하고, 국민전체, 빈부양측을 포괄하는 국민의 권익을 제일의적인 문제로 삼는 것이 곧 파시즘이라는 것이다.


물론 국민의 권익은 국민의 물질적 이익만을 염두에 두는 것은 아니다. 국민전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역사적 인민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단순히 현재 이 순간에 국토 위에 현존하는 이들에 한정되지 않고 과거-현재-미래로 이어지는 국민공동체 전반을 포괄하는 개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과 관련해 강상운은 독일과의 통일을 거부한 벨기에의 입장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벨기에의 국가는 현재의 벨기에의 인민뿐만 아니라 과거의 벨기에인, 미래의 벨기에인의 국토다. 따라서 현재의 벨기에는 선조를 위하여 또 자손을 위하여 생사를 무릅쓰고 벨기에의 독립을 지켜야 한다."


이렇게 파시즘 혹은 전체주의를 「역사적 인민을 주체로 삼는 국민주의」라고 정리하면서 이에 대한 대표적인 사례로서 독일의 파시즘, 히틀러 운동을 사례로 제시하고 있다. 어러한 전체주의 운동은 18세기적 인권선언을 부인하며 「법치주의 대신에 실질적인 정의주의를, 의회의결주의 대신에 지도자 결의주의를 주장하고 삼권분립 대신에 통령주의를 주장」하는 것이 특징적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는 히틀러 운동이 장기적인 독재, 소련을 적으로 상정해 싸운 점 등으로 현실에서 패배했다고 인정하고 있으나, 그럼에도 여전히 한국의 현실에서 유의미한 참조의 대상이라고 인식했다. 그에 따르면 여전히 세계사조는 「자유주의에서 전체주의로, 의회정치에서 지도정치로」이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현대사회가 일종의 정치적 전향기, 즉 칼 슈미트적인 의미에서 비상시라는 인식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더 나아가 그는 이러한 사유 속에서 현대정치의 주요과제는 곧 독재정치에 있다고 주장하는데, 칼슈미트가 독재와 민주주의를 반드시 상호대립하는 관계로 이해하지 않은 것처럼 그 역시 독재를 일률적으로 평가할 수 없으며, 독재가 필연적으로 민주형태의 부정으로 연결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이는 파시즘 역시 민주주의의 일종으로, 자유주의 정치질서보다 고차적인 민주주의가 파시즘 하에서 실현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강상운 박사의 이러한 인식경향은 1940년대 후반 한국 지식계의 정치사상적 단면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추축국은 전쟁에서 패배했지만 비상시는 여전히 진행중이고, 서구의 몰락이라는 문제, 서구가 낳은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모순 역시 해소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해방 후 많은 지성인과 또 정치인들은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한국에 뿌리를 내리기도 이전에 「포스트 자유주의」를 고민해야만 했었던 셈이다. 불행하게도 미국의 압력과 한국전쟁에 의해 이러한 담론은 사라지고, 서구사조에 대한 무비판적 맹종이 한국사회 전반을 지배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자들은 파시즘을 비난하며 너무도 편리하게 파시즘을 역사의 무덤 속에 묻어 버린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어떤 정치사조이든 정치체제이든 그것을 낳은 역사적 조건의 현존 아래서만 유의미한 것이다. 파시즘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파시즘을 낳은 사회적 병폐가 우선 해결되어야 할 것이다. 강상운 박사가 지적한 제국주의와 민족국가 사이의 문제, 자유주의의 향락주의와 착취주의가 근절되고 주권국가가 건설되기 전까지 파시즘은 여전히 한국사회는 물론 전세계적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주요한 무기가 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참고자료

  1. 후지이 다케시, <한 정치학개론의 운명>

  2. 기유정, <근대 한국의 정치학과 그 학적 전환의 논리>

  3. 강상운, 《현대정치학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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