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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충성 김

근대 한국의 '창조적 전통' 담론과 그 실천



  • 기록영화 <민족의 재발견> (1977)의 한장면, 경주의 '통일원당' 건축과정을 담고있다.



우리는 흔히 한국의 전통주의 담론을 격하하는 언술들이 '만들어진 전통' 운운하는 담론을 근거로 삼는 경향을 종종 접하게 된다. 포스트모던적 상대주의에 힘입어 널리 유포된 이런 주장에 있어서, 전통이라는 것은 근대에 와서 만들어진 한개의 창작에 지나지 않을 뿐이며, 그런고로 얼마든지 해체되고 재접합 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다. 이들은 이런 담론을 구사하며 편리하게 전통주의 담론의 실체를 까발렸다고 의기양양해 할지 모른다. 그러나 역사를 되돌아 보면, 한국의 전통주의 담론 그 자체가 '만들어진 전통'을 긍정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한국의 전통주의를 비판하는 자들은 전통주의 담론의 생산자들이 주장하고 있는 바를 거의 그대로 재현하면서, 그들을 비판한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되돌아 볼 필요가 있겠다. 많은 한국의 전통주의자들은 전통을 결코 과거로부터 선험적으로 주어진 어떤 실체처럼 여기지 않았으며, 그렇기에 맹목적인 복고나 향수에의 경향 또한 비판적으로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해방 후 전통 논의의 시발점이라 할 수 있는 윤곤강의 <문화와 전통의 창조>라는 글을 보자.


전통이란 다만 과거의 역사에 나타난 한 현상이 아니라 미래까지를 내포하고 좌우하는 커-다란 힘을 말한다. 그러므로 어떠한 전통을 전제로 하지 않고 혁신이라는 것을 생각할 수는 없다. 혁신이란 사물이 새로워지는 것을 말함이오. 사물이 새로워진다는 것은 어떠한 의미로든지 이제까지 없었던 것을 만들어내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전통 가운데에 이미 혁신을 위한 새로운 맹아가 마련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혁신은 전통의 탐구와 그 본질의 파악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여기에 따름면 전통이란 과거의 산물이지만, 단순히 과거의 지나간 역사에 귀속되는 것은 아니고, 현재는 물론 미래까지 그 안에 내포하면서 이를 제약하고 좌우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이미 전통 속에 새로운 것, 혁신을 위한 맹아와 계기가 내포되어 있으므로, 혁신과 전통은 별개의 것이 아니며, 혁신은 또한 전통의 탐구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이다.이러한 인식에는 '전통'을 단순한 과거의 고정태인 '인습'과 별개의 개념으로 이해하면서, 영구적으로 새롭게 개선되고 혁신되는 동적인 생명체로 인식하는 경향을 엿볼 수 있다. 윤곤강은 이러한 '전통'을 우리 문학의 역사에서 윤선도의 시에서 발견한다. 그는 윤선도의 평이하고 소박한 '기층민의 언어' 속에서 현대에도 통용될 수 있는, 평민주의적 문학의 가치를 발견하고, 이것을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민족의 전통으로 확립하고자 한다.


해방 이후 김동리와 더불어 순수문학파의 거두였던 문학평론가 조연현의 경우를 보자. 그 또한 민족문학의 서구 지향을 단호히 거부하면서, 민족의 전통 속에서 민족문학의 가치를 찾고자 한다. 그가 '민족의 본질은 그 신화 속에' 존재한다는 셸링의 말을 인용하는 이유 또한 민족의 현실을 과거와의 연결 속에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연현 역시 과거의 단순한 반복이나 답습에서 전통의 가치를 찾지 않는다. 그 역시 전통은 무엇보다 현실과의 관계 속에서 새롭게 창조되어야 할 성질의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한 맥락에서 조연현은 '고전을 의식적으로 거부' 할 때 오히려 고전적일 수 있다는 역설을 제시한다. 고전은 단순한 고정적 실체가 아니며, 영원성과 보편성이야말로 고전의 본질이므로, 고전의 계승과 고전의 창조는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그에게 정말로 중요한 것은 낡은 과거의 관습이 아니라 현대에 맞게 새롭게 전취된 전통, '현대적 전통'이다.


그런데 그가 '현대'와 '근대'를 구분하고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또한 주목할 필요가 있으리라. 그가 말하는 현대란 근대와 혼용되거나 혹은 단순한 근대의 연장선 속에서 존재하는 편리한 시대구분의 용어가 아니다. 그에게 현대란 근대의 기계문명, 반(反)인간적 서구문명을 극복한 뒤에 오는 새로운 시대의 질서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에게 우리의 문학사에는 '근대'가 결여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은 민족적 수치만은 아니며 오히려 민족의 미래는 근대를 뛰어 넘은 현대를 향해 열려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현대는 근대를 극복한 자리에 오는만큼, 민족의 전통은 민족의 현대를 수립하기 위한 하나의 중요한 자양분이 된다. 전전 일본의 '근대초극론'과 공명하는 이러한 인식은 김동리, 서정주, 조지훈, 모윤숙을 비롯한 당시의 문화계 인사들, 더불어 이범석, 안호상과 같은 정계나 학계의 인사들에게 공통된 인식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근대'를 상대화하는 법을 배웠으므로, 더이상 민족의 전통도 서구의 합리주의 문명에 비해 손색이 없는 것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이들에 따르면 근대란 그 자체의 모순으로 파탄에 이르른 낡은 문명이며, 서구문명의 황혼기에 동양의 전통은 이미 오랜 지나간 것, 박물관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유물 따위가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초석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민족의 전통을 확립하는 것은 단순한 국민국가 수립의 과제일 뿐더러 근대의 모순을 초극하는 세계사적 과제의 일부로 자리잡게 된다.


한국의 사상계에서 이러한 '현재적 전통'론과 공명하는 인식을 찾는다면 바로 열암의 철학이 그 전형이 되지 않을까 한다. 조연현과 더불어 70년대 초 <문예중흥선언>을 기초하였고, 조연현이 출판했던 <문예>지에 여러 차례 기고하기도 한 열암은, 그 자신이 30년대 '서구의 몰락'이라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철학을 했던만큼 막다른 골목에 처한 근대성의 위기와,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현대적 전통의 창조라는 과제에 공명하고 있었다. 조연현과 마찬가지로 박종홍 역시 서구의 비합리주의 철학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면서 50~60년대의 사상계에 실존주의 사상을 소개하는데 앞장섰던만큼, 객관적 지식이나 이론보다 민족의 실존이라는 문제를 앞에 두고 사유하였던 인물이다. 박종홍에게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현실이요, 그 현실을 살아가는 주체인 '우리'의 존재론적 문제였다. 그러나 그 우리는 역시 과거와의 연결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며, 전통과의 상관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과거의 제약을 무시할 수 없으며, 그것을 현실에 맞게 되살리는 '전통의 창조'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고전부흥의 의의>라는 글에서 박종홍의 다음과 같은 언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창조는 양적 발전이 아니요, 질적 비약의 과정이며 (...) 혁신적 비약의 과정이다. 그러나 이것은 전통적인 것을 그저 부정만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그 부정을 매개로 하여 근원적으로 전통이 목표하는 바 종국적 목표를 다시 긍정하는 과정이요, 발전적으로 살려서 계승하는 실천이다.

열암은 과거의 지나간 역사의 객관적 사실을 우리가 새롭게 창조하거나 바꿀 수는 없다고 보았다. 그러나 그 역사에서 무엇을 보는가, 그리고 무엇을 되살리고 계승할 것인가, 거기에서 '전통'으로서 수립할 수 있는 가치있는 것을 발굴하는 것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라고 보았다. 따라서 그에게는 외래 이론의 수입도, 혹은 전통의 결과물인 관습의 혁신도 문제될 것이 없었으며, 바로 이러한 인식이 60~70년대 박정희 정권의 '새 역사의 창조'론과 공명하면서 유신의 이데올로기로 자리잡아 간다고 할 수 있다. 박정권은 열암의 철학에서 보이는 바와 같은 근대화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현실의 과제를 위해 전통을 새롭게 계발해야 한다는 믿음을 공유하고 있었다. 때문에 박정권 역시 '조국근대화'라는 과제 속에서 부조리하다고 여겨지는 관습과 문화에는 가차없이 칼을 들이대는 한편으로, 현실의 필요와 과제에 부합하다고 여겨지는 문화에 대해서는 그 계발을 위한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더 나아가 박정희 정권은 '문화유적' 조차도 창조될 수 있다는 '혁명적인' 발상에 이르게 되는데, 문화공보부가 자랑하듯 1977년 경주에 건립된 통일전은 바로 이 '창조된 문화유적'의 전형적인 사례일 것이다. 문화공보부가 1979년 <문화공보 30년>이라는 저작에 기록하고 있는 내용은 전통문화의 '창조'에 대한 이들의 인식을 보여주는 것이다.


...통일전의 조성은 과거에 세워진 유적의 보수나 복원이 아닌 이 시대의 발전상과 기술을 동원하여 새로 조성된 창조적 문화유적인 점에 있다. ... 통일전을 조성함에 있어 종래의 단청수법(手法)을 벗어나 품위있고 우아하면서도 소박․간결한 미색단청을 처음으로 실시하였는 바 이는 전통문화의 소극적 보존으로부터 벗어나 적극적인 계발을 이룩하려는 노력의 한 성과인 것이다.

전통은 단순히 관념적으로 따라야 할 표준이 아니라, '새 역사 창조'를 위해 끊임없이 현실적 노력에 의해 계발되어야 할 것이라는 인식은 여기서도 드러난다. 그리고 그 구체적인 실현으로서, 고대 신라의 건축 양식을 활용하면서도, 거기에 현대적 기술을 가미했다는 사실이 언급되고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고대 신라의 건축 양식은 현대적으로 재해석되고 재생산됨으로서 오늘날까지 통용되는 '문화유산'으로서, 단순히 박물관에 전시된 유적이 아닌 현대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현대문화로서 그 생명력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현대적 과제'를 중심에 두고 과거와 미래를 쌍방향의 소통과정으로 이해, 전통을 매순간 인간의 실천에 의해 새롭게 형성되어가는 유구한 과정으로 바라보는 인식이 한국의 전통문화담론에서 연속되어 왔으며, 또 그것이 단순한 논쟁이 아니라 현실정치, 그리고 정책에도 반영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 물론 그 실제적인 결과에 대해 우리는 여러가지 평가를 할 수 있겠으나, 거듭된 문화창작의 결과로 고전이 탄생한다는 역사적 사례에 비추어 본다면, 그러한 시도의 거듭 속에서 우리 민족문화에 있어서도 현대적 개화기가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가져볼 수는 있을 것이다.


이들이 '현대적 전통'의 수립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근대 한민족이 수립한 '전통'의 계보학적 빈곤에 따른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한민족은 근대화에 서둘렀던 일본과도 다르고, 전통적 강대국인 동시에 외세의 완전한 식민상태로 귀결되지 않았던 중국과도 달리 반도의 약소국으로서 왜정의 식민지배로 36년여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이에 더불어 전통문화의 보존과 계승에 인색했던 문화적 풍토 탓으로, 확고한 민족적 자아의 수립 없이 해방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러한 고로 전통의 수립이란 과거의 문제가 아닌 현실의 문제, 더 나아가 미래의 문제로서 절실하게 고려되었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오늘날 한국의 현실에서, 이들이 가졌던 당대적 고민과 문제의식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증거는 도처에서 발견할 수 있다.


'민족문화의 창달'을 정부의 정책적 의무로 규정해 놓은 법의 구절이 무색하게, 우리는 오랫동안 전통문화의 계발에 너무도 소홀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금일 우리가 세계에 자랑한다고 떠드는 한국의 소비문화에 정작 한국적인 정체성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은, 민족의 문화적 발전에 있어서 크나큰 수치가 아닐 수 없다. 세계 여러나라를 돌아다니며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으나 정작 인간을 보지는 못했다는 드 메스뜨르의 언설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소위 말하는 'K-컬쳐'가 자랑하는 세계적 인기는 그것이 가진 민족적 전통과 현실을 떠난 보편성에 있지 않은가. 아무리 세계인의 인정을 받는다고 한들 민족과 더불어 호흡하지 못하고 민족의 운명에 해가 되는 문화라면 과연 민족문화의 일부로서 제값을 한다고 할 수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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