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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충성 김

최창규 - 한국적 민주주의의 본질




...한국적 민주주의는 문자 그대로 민주주의 앞에 한국이란 주체가 상징되고 있다. 여기에서 한국이란 주체는 한국사의 주체인 동시에 민주주의의 실천주체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민주주의 앞에 붙은 한국이란 상징은 이제까지 자유를 비롯하여 민주주의 앞에 붙여져온 근 3백개의 그 어떠한 접두어와도 다르다. 왜냐하면 이제까지 붙여져온 접두어들은 그것이 자유든 교도든 모두 민주주의의 성격을 설명하고 그것을 부각시키기 위하여 붙여진 수식적이며 종속적인 접두어에 불과하다. 즉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가 강조되어도 그것은 민주주의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며 교도 민주주의에서 교도가 아무리 강조되어도 그것 또한 민주주의를 위하여 종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적 민주주의에서 한국은 민주주의를 설명하기 위하여 붙은 단순한 설명적 접두어가 아닌 것이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실천 주체를 뚜렷이 밝히기 위하여 강조된 민주주의의 주체와 국적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한국은 민주주의의 실천 주체인 것이며 민주주의 는 그 실천 주체에 의하여 성장되고 인도될 문화이며 역사인 것이다. 그 결과 한국적 민주주의에서는 한국이 민주주의를 위하여 존재하는 공식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민주주의가 그 실천 주체인 한국을 위하여 최대로 봉사하고 공헌해야 할 공식으로 되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적 민주주의는 그 민주주의 속에 이미 자유민주주의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그 자유민주주의가 한국이란 주체의 행복에 최대로 봉사하고 한국이란 역사의 토양에 최대로 효 율적이기 위한 창조의 공식인 것이다. 여기에서 한국적 민주주의의 기본적 성격은 우선 그 주체성으로부터 출발하게 된다. 주체성은 민족이라는 주체가 갖는 최대의 창조력과 직결된다. 따라서 자유민주주의가 한국이라는 주체 앞에서 최대로 창조력을 지니기 위하여 당연히 민주주의 앞에서 그 주체인 한국의 주체성이 강조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같이 한국적 민주주의의 성격이 지니고 있는 민족적 주체성은 바로 자유 민주주의 앞에서 그 주체인 한민족의 창조력이 최대로 되기 위한 창조적 주체성인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자유 민주주의의 한 주체인 한민족 앞에서 그 자유민주주의의 효율이 최대로 봉사하기 위한 효율적 주체성인 것이다.


또한 민족이란 주체가 지니는 주체성은 바로 국가란 주체가 가져야 할 정통성을 확인시키는 기반이 되기에(국가적 정통성과 민족적 주체성은 상호비례) 이같이 한 민족의 주체성을 우선적으로 확인하려는 한국적 민주주의의는 당연히 그것을 주장하는 대한민국의 정통성으로 연결되어 지게된다. 대한민국은 이미 그 기본 질서에서 자유민주주의를 그 국가적 정통성의 기반으로 확인하여 왔다. 그러나 한국적 민주주의가 표방하는 민족적 주체성을 통하여 대한민국의 정통성이 보다 효율적이고도 긴밀하게 자유민주주의와 연결될 수 있다면 우리는 바로 그 자유민주주의를 위하여서도 자유민주주의에 우선하여 한국적 민주주의를 주장하여야 하는 것이다.


오늘의 분단된 양체제 위에서 통일을 놓고 벌이는 경쟁은 결국 통일된 이후 한민족 앞에 하나밖에 없을 민족사의 정통성을 놓고 벌이는 경쟁으로 요약된다. 이같은 민족사의 정통성을 놓 고 벌이는 경쟁은 결국 양체제가 지니는 국가적 정통성의 경쟁으로 또한 요약된다. 따라서 우리는 한국적 민주주의를 통하여 자유민주주의에 기반한 대한민국의 국가적 정통성이 통일 앞에서의 민족사 정통성의 경쟁에서보다 효율적일 수 있다면 한국적 민주주의에 대한 선택은 그 상황적 이유에서도 이미 자명하여지는 것이다. 그것은 결국 통일이라는 한민족사의 사명 앞에 자유민주주의가 지닐 그 역사적 기능을 그만큼 효율화시키는 것이 된다. 이같이 한국적 민주주의가 표방한 민족적 주체성 위에서는 아울러 대한민국의 국가적 정통성과 한민족이 역사 앞에서 지닐 민족적 효율성이 함께 수반되어 나오는 것이다.


다음으로 한국적 민주주의와 성격이 다시 제시되어야 한다면 그것은 곧 총화성이라 할 수 있다. 총화성은 곧 자유민주주의에서 강조하는 자유의 원리를 주장하되 〔즉, 화(和)〕 그것을 다시 전체주의에서 강조하는 평등의 효율〔즉, 총(總)〕과도 연결 시키려는 조화의 가치에서 나온 것이다. 오늘날 자유민주주의에서 강조되는 자유와 전체주의에서 강조되는 평등은 민주주의에서 없어서는 안 될 기본적 양(兩)가치 이지만 그러나 이 양가치는 하나로 합일하지 못하고 끝내 평행선을 그려오고 있는 것이다. 즉 자유가 강조될 때 평등은 파괴되며 평등이 강조될 때 자유는 제약될 수 밖에 없다는 식으로............


우리의 민주적 전통에서 가장 특징적인 경애 사상과 한얼 사상을 그 예로 들어보자. 경애사상은 도덕적인 가치에서든 화합적인 가치에서든 서로 차등이 있는 개인 사이를 조화 시켜온 사상이었고 한얼 사상은 하나(一)와 큰 하나라는 즉 개인과 전체를 조화시켜온 사상이 었다. 즉 경애 사상에서는 100이라는 가치를 가진 인간과 50이라는 가치를 가진 인간이 똑같이 개인이라는 양(兩)주체로 성립하는 개인주의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이때 100의 개인은 50의 개인에게 애(愛)로써 연결하고 또 50의 개인은 100의 개인에게 경(敬)으로써 연결될 때(공경) 그것은 이미 차별적인 별개의 개인은 아니다. 즉 100은 50을 자기와 같이 사랑할때 이때 50은 이미 차별적 50이 아니고 100과 똑같은 수준에서 100속으로 조화될수 있으며 50은 자기가 50이라는 부족한 개인을 승인하되 항상 자기 이상인 100을 공경할때 그 50은 항상 100으로 향상될 수 있는 조화적 향상이 가능한 것이다. 그것은 곧 개인을 중심으로 한 자유의 가치와 전체를 중심으로 한 평등의 가치를 하나의 가치로 상호조화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총화성은 자유민주주의가 강조하는 개인의 자유에다 전체주의가 강조하는 전체의 평등이라는 효율을 조화시킨 것이며 또 3명의 의사가 2명의 의사보다 반드지 선(善)하다는 보장이 없는 것이 아니냐? 라는 근대 민주주의에서의 다수결의 제약을 보완할 수 있는 새로운 효율이기도 한 것이다.



- <계간 공군> , 제138.139 합병호 (1974) 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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