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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충성 김

이범석 - 민족론




이번 대전은 이 민족의 독립 없이는 세계 평화가 위협을 받는다 하여 미,소,영,중 등 민주주의 연합제국의 성의 있는 국제 공약으로 우리의 독립을 선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처지는 왜 오늘과 같이 처참하게 되었는가.


 이것은 밖으로 어찌할 수 없는 국제적 모순이 우리를 제약하는 바가 절대적인 것이지만, 또한 안으로는 조선의 정치인들이 너무나 비(非)조선적이었기 때문이라고 하겠다.


 이 민족의 혈통을 잇고 이 민족의 말을 하고 이 민족의 눈물과 땀에 얽힌 쌀을 먹고살면서도, 이 민족의 역사와 이 민족의 문화, 나아가서는 이 민족 자체를 똑바로 인식.파악하지 못하는 그네들이 오직 개인의 영화만 생각하고 자기가 미국인인지 소련인인지 분별조차 없이 다만 현실의 세리(勢利)를 좇아 온갖 궤변을 부려가며 옳지 못한 주장을 부르짖는 데서 이 민족의 운명이 날로 더욱더 구하기 어렵게 기울어져 가는 것이다. 게다가 그네들은 자기들만이 가장 우국자인 척하는데서 정신적으로 가장 용서 못 할 고약한 죄를 짓고 들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소위 학자라고 하는 자의 이론이라고 다 정당한 것은 아니며 매국적 중에도 일류의 학자가 많이 있으니, 요컨대 학자라고 다 반드시 그 민족의 참된 일원이라는 법은 없다. 항상 눈 앞에 어른거리는 이욕(利慾)에 급급하여 시간과 공간의 역사적 차이조차 알지 못하는 그네가 부흥하려는 민족을 위하여 대체 무엇을 하겠는가. 그러나 이러한 병폐의 근원을 따져 보면 슬픈 일이지만 역시 오랜 것이다.


 이제 진실로 조선이 바로잡히고 이 민족이 부흥하려면, 먼저 우리는 참다운 민족적 긍지와 민족적 신념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긍지와 신념은 자민족의 역사적 실태를 똑바로 인식.파악하는 데서만 얻어질 수 있다. 그런데 여러분으로 말하면 억울하게도 망국지민으로 일본제국주의의 학정 하에서 태어난 관계로 민족이 무엇인지 감정적 또는 현실적으로는 의식할 수 있었을지라도 정확히 인식할 기회는 거의 없었을 것이다.


 더욱이 8.15 이후 가지각색의 반역적 도배들이 혹은 언론으로 혹은 실천으로 민족을 부인하는 일을 계속해 왔기 때문에 많이 현혹되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따라서 나는 가장 뜨거운 정성과 정열을 기울여 여러분에게 이 강의를 하게 되는 것이다.

 

 대저 민족이란 어떻게 형성되는 것인가? 한 민족을 형성하는 요소는 첫째로 혈통, 둘째로 영역, 셋째로 문화, 넷째로 운명, 이 네 가지가 공통적이다. 이 네 가지 공통성은 장구한 시간의 도가니 속에서 배합되어 민족을 완전히 역사적으로 형성해 왔고 또 생성.발전시켜 나가게 되는 것이다. 영역의 공통성을 얻은 한 혈연이 시간의 경과와 함께 성숙시킨 문화 및 운명이 마침내 그 혈족의 특질을 짓게 되면, 여기에 한 민족이 형성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민족 형성에 관한 가장 자연스러운 견해 일 것이다.


 그러나 근대적 민족의 형성 과정을 보면 이와는 궤를 같이할 수 없는 예도 있다. 또 네 개 요소의 배합의 실상에는 각 민족에 따라서도 경중이 다를 것임에, 혹은 혈연과 문화의 공통만으로 민족이라고 부르는 수도 있고, 문화와 영역의 공통을 서로 관련시키면서 민족을 말하기도 하고, 영역의 공통, 즉 같은 환경이 민족을 만든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한 민족이라고 하면, 요컨대 네 가지 요소가 어느 정도 서로 혼합되어 있을 것만은 틀림이 없을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이 살기 위하여 떼려야 뗄 수 없는 뭉치, 이것이 민족이다.


 그런데 나는 혈통의 공통성을 민족 형성의 기본 조건으로 생각하고 싶다. 혈통으로 분류하면 세계에는 단일민족과 복합민족이 있다. 단일민족이라 함은 전 민족의 혈통이 동일함을 말함이오, 복합민족이라 함은 각기 다른 몇 개의 혈족이 합성된 민족을 이름이다. 물론 복합민족의 경우 복합인 이상 거기에는 혼혈, 즉 피의 교류가 있을 것이며, 또 조금이라도 있어야 한 민족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러나 거기에는 뚜렷이 구별지을 수 있는 몇 개의 혈족이 병존한다.


 우리 민족은 자랑스러운 전형적인 단일민족이다. 그러나 중국 민족이나 아메리카 민족이나 러시아 민족 같은 것은 모두 단일민족이 아니다.


 중국 민족은 만,몽,한,회,장의 5개 종족(혈연을 이렇게 부른다)로 되었고, 아메리카 민족은 역시 영,불,독,서,라틴의 몇 개 종족으로 되었으며, 슬라브 민족은 대소 130여 종족, 그 중에서 큰 것만 30여 종족이다. 또 일본민족은 대화 민족이니 무어니 떠들어대지만, 사실은 민족 형성의 역사조차 분명치 않는 것이오, 그 민족 구성이 뒤섞여 있음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러니 이런 복합민족의 경우에 민족이라 함은 우리와는 좀 다른 것이다.


 그들에게는 민족이 있고 종족이 있지만, 우리는 민족이 곧 종족이요 종족이 곧 민족이다.


 다음 중요한 조건은 영역인데, 다른 것도 그렇지만 영역이라는 개념은 특히 정태적.고정적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반드시 동태적.역사적으로 보아야 한다. 한 종족이 영유하는 지역은 역사적으로 신축, 소긴(疎緊), 이동, 변경 모두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중심이 변동되지 않는 한 그 종족의 본질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일은 없을 것이고, 이와 반대의 경우에 봉착할 때는 반대의 결과가 나타날 것이다. 같은 혈족일지라도 긴 세월 그 영역을 서로 달리할 것 같으면 자연히 그 정서가 달라질 것이요, 또 그 풍습이 달라지고 문화가 달라질 것이요, 따라서 그 운명이 서로 달라질 것이다. 한편 영역이 같음으로써 이족(異族)끼리 한 민족을 형성하는 계기가 생길 수도 있다.


 다만 여기에서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이례(異例)가 있으니 그것은 유태 민족이다. 그들은 조국 강토를 상실한 지 이천년, 아직도 그들의 정서, 그들의 습성을 완전히 상실한 적이 없고 타민족에게 동화된 일도 없으니, 그들은 지금도 역시 유태 민족인 것이다. 그들은 비록 발붙일 조국의 땅은 잃었을망정 마음 붙일 조국의 땅을 잃은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관념 속에 조국을 깊이 간직해 왔으며 언제나 ‘시온산’을 잊지 않았다.


 다음 조건은 문화이니 비록 같은 혈통을 이었고 같은 영역에 살지라도 같은 문화를 이룩하기 전에는 한 민족이라고 할 수 없다. 문화란 인간의 사회적.역사적 생활의 존귀한 소산으로 언어, 예술, 풍속, 품격, 윤리, 정치, 경제, 국방의 이념 및 체제 등을 말함이니, 첫째로 이런 것들이 다르면 거기 한민족이라는 공감이 생길 수 없다. 이와 반대로 혈통, 영역 같은 자연조건이 불비.미숙하더라도 미국과 같이 같은 문화를 갖게 된 여러 종족은 한 민족을 형성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문화 침략의 이유도 쉽게 알아낼 수 있게 된다. 한 민족이 소유한 문화를 철저히 뿌리채 구축.매장.말살할 때 그 혈족은 완전히 성격이 없는 노예로 화하여 침략자가 의도하는 바 식민지 문화를 달게 접수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문화라는 것은 민족을 유지하거나 형성.발전시킴에 있어 다 같이 위대한 힘을 가지는 것이다.


 끝으로 민족을 형성하는 다른 하나의 조건은 운명이니, 민족은 하나의 공동 운명하에 자체를 떼려야 뗄 수 없는 공고한 공동체로 완전히 결정(結晶)되는 것이다. 모든 것이 같을지라도 생활의 전면적 규정인 정치적 운명을 달리할진대, 그 종족은 한 민족을 이루어 나갈 수 없을 것이다. 운명의 공동은 민족의 가장 튼튼한 유대이다.


 그런데 우리는 희귀한 단일 혈통의 민족이요, 또 삼천리 강토 동일한 영역에서 반만년 생성해 온 민족이요, 통틀어 공통적인 문화를 소유한 민족이요, 게다가 철저한 공동 운명을 가진 민족이다. 민족 형성으로 보아 우리는 또 가장 긴밀하고 가장 완전한 그리고 가장 자연스러운 민족이다. 우리 민족과 같이 한 민족으로서 이렇듯 빈틈없이 훌륭하게 형성된 민족은 아마도 세계에 다시 없을 것이다.


 본디 세계에는 한 종족만이 존재한 것이 아니요 또 한 민족만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니, 민족이 형성돼 온 과정은 결코 단순하고 안일하고 평화적인 길이 아니었다. 그것은 반대로 몹시 복잡하고 험난한 부단한 투쟁의 연속이었다.


 객관적으로 인류의 역사를 관찰할 때 우리는 그것이 순전한 자연과의 투쟁을 제외하면 거의 번영과 권세 또는 명예와 생존을 위한 족속 대 족속의 투쟁으로 시종 일관하였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족속이란 아득한 고대에는 씨족일 것이요, 다음 단계에는 종족일 것이요, 바야흐로 민족이 형성되면서부터는 민족을 말할 것이다.


 마르크스는 역사를 계급투쟁의 역사라고 하였으나, 물론 그 시대 시대에 한 족속 내부에서도 늘 권리의 균형을 위한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의 투쟁이 있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 족속 내부의 투쟁에 그쳤을 따름이요, 한 번도 역사의 주류를 지배한 적은 없었다.


 역사의 주류를 지배해 온 투쟁은 혹은 족속과 족속의 농노 쟁탈을 위한 전쟁이었고, 혹은 정치적.경제적.문화적 모든 영예스러운 우월권을 확보할 수 있는 전면적 지배나 제패를 위한 전쟁이었고, 또 혹은 신앙의 관철이나 설욕의 복수를 위한 전쟁이었고, 혹은 기득 이권이나 나아가서는 생존권의 위협을 방어하기 위한 전쟁이었고, 그렇지 않으면 침략한 지배족속을 몰아내고 자기 족속의 주권을 광복하기 위한 혁명 전쟁이었다.


 이번 대전을 단순히 주의와 주의의 싸움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으나, 그것은 너무나 천진난만한 소견이라 하겠다. 실은 민족과 민족의 투쟁이 주 요인이요 본질이며, 주의와 주의의 싸움은 형식이요 명분에 불과했던 것이다. 전쟁에 있어서 민족과 민족의 연합은 오직 민족적 이해타산에 근거하였을 것이다.


 이러한 족속과 족속의 투쟁에서 승리한 족속은 생성.발전하였고 패배한 족속은 전락.쇠멸하였다. 어떤 족속은 씨족시대에 역사에서 사라졌고, 어떤 족속은 종족시대에 역사에서 사라졌다. 민족을 형성한 뒤에 역사에서 사라진 족속도 적지 않다.


 여기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정복한다고 하자. 정복한 민족이 정복당한 민족을 노예로 끌고 가는 수도 있겠고, 비옥한 토지를 점령하고 그 지역으로부터 몰아내는 수도 있었다. 더욱 처참한 것은 우선 몰아내고는 쫓겨간 곳까지 나가 다시 그 중에서 일부를 노예로 끌어오는 경우, 또는 그대로 그 지역에 매둔 채 마음대로 부리고 형벌을 가하는 경우도 있었다.


 수많은 정복을 역사적으로 보면 심하고 덜하고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그 방법, 그 기술은 오늘날에 더욱 교묘하게 세련되었을 뿐이다.


 결국 장구한 세월 이렇게 되면 종복당한 민족은 멸망하는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정복한 민족은 새로 획득한 호조건에 힘입어 굉장히 발전하며, 그래서 정복당한 민족의 우수한 일부는 차라리 정복한 민족에게 동화되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변천하므로 정복당한 민족에게도 가끔 민족적 궐기의 기회가 와서, 또 혹은 장구.가열.과감한 투쟁을 거쳐서 대세를 만회하는 수도 있었고, 혹은 정복한 민족에게도 새로운 민족적 패배나 민족적 쇠퇴가 있어서 정복했던 민족을 멸망에까지 이끌어 넣지 못하는 수도 있었다.


 이런 것과는 다른 예로 한 지역을 몇 개의 민족이 서로 쟁탈한 끝에 오히려 세력의 균형을 이룬다든지, 그렇지 않으면 접경지역을 서로 영유하면서 승부를 결정하지 못한 몇 개 민족이 역사의 발전에 따라 거리의 단축, 문화의 교류, 그리고 새로운 공동 운명 아래 더 큰 새 민족으로 형성되는 수도 있었다.


 수많은 투쟁과 각축을 거치고 흥망성쇠, 무상한 전변을 거듭하면서 민족은 성장하고 민족은 퇴영하였다. 그리하여 역사는 또한 발전하였다. 투쟁은 결코 무의미한 것이 아니었다. 본디 투쟁하려는 의욕은 자아 발전의 의욕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여기서 자아의 발전을 위하여 타아의 정당한 발전마저 무시하게 될 때에는 이것이 침략으로 나타나는 것이니, 옳지 못한 투쟁으로 변질하고 만다. 그러나 발전하려는 의욕을 가진 존재는 불완전한 존재요,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 의욕이 옳지 못하게 표현될 수는 있을지라도 이것은 불가피한 노릇이라, 그렇다고 그것을 통해 발전한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밟아 오늘날의 세계사적 현실은 전개되고 있는 것이니, 이는 우연한 일이 아니다.


 향후 인류는 그의 놀랄 만한 과학의 발달로 인해 종래와 같은 형태의 전쟁은 불가능할지도 모르고, 또 필경 전 인류를 한 덩어리로 만들고 말지도 모른다. 전 세계가 분리할 수 없는 완전한 하나의 영역이 되고, 그 속에서 전 인류가 바야흐로 하나의 문화를 가지게 되고 혈맥이 서로 교류하고 오직 하나의 운명에 결부되어, 오직 하나의 세계 민족이 형성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다만 이러한 것은 모두 먼 장래의 일이다.


 지금은 전후 좌우에 단 하나의 사실, 즉 민족과 민족끼리의 투쟁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을 뿐이다.


 인류의 역사가 하나의 세계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아직도 허다한 민족의 투쟁을 경과해야 할 것이다. 아직도 허다한 민족의 노예화와 그 멸망을 경험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잔혹한 말이지만 움직일 수 없는 엄연한 법칙이다. 세상에는 당장에 세계주의가 실현될 것처럼 믿는 사람도 있으나 그것은 가장 어리석은 일이다.


 헤겔 같은 사람도 그 시대에 민족의식을 시인하였고, 가까운 예로 존경할 만한 혁명가 레닌 같은 이도 온 세계에서 무산자가 독재하게 될 때에는 민족의식이 일직선이 되리라고 하여, 민족의식을 부인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민족혁명을 통한 민족의식의 수평화로 이념을 삼았다.

 유일한 인류적 의식보다도 개별적인 민족의식이 더 강하게 지속되는 한 세계주의는 한낱 한가로운 사람의 환상에 지나지 않게 될 것이다.

 

 민족이란 끊임없는 투쟁의 피비린내 나는 단련 속에서 호흡해 온 것이 틀림없다고 하면, 한 민족이 다른 민족으로 말미암아 침략을 당했을 때에는 그 민족에게 반드시 멸망을 면하기 위한 민족적 반항이 있는 법이다.


 아일랜드 민족은 앵글로색슨족의 침략과 더불어 투쟁하기 700년 만에 자유국이 되었고, 중국 민족은 왜놈의 침략과 더불어 항전 8년 만에 승리를 했다. 아프리카나 아메리카, 아시아인들에게도 선진 민족들의 유린에 대한 가련한 반항이 있었거니와, 우리는 여기서 또 미국의 독립전쟁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들 여러 민족으로 이루어진 이주민들은 아메리카라는 한 신천지에서 이주민으로서 동일한 이익, 공동의 정치적 운명 아래 한 뭉치가 되어 용감하게 침해자 대영제국과 싸워서 이겨 독립했던 것이다. 우리 민족의 역사도 전체적으로 볼 때 언제나 외래의 침략과 싸워서 결국은 민족의 주권을 회복해 온 역사였다.


 그러기에 지나간 국치 36년간 시종 사선을 뚫고 왜놈의 침략에 대하야 투쟁한 혁명운동이 연면한 것도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회고컨대 그 기간 우리 민족의 반일운동은 그 방법, 형태 여하를 막록하고 모두가 확고 불발(不拔)한 민족의식에서 나온 것이었다. 우리는 왜놈의 노예가 될 것이 아니라 기어코 다시 독립하여 민족적 주권을 가지고 살자는 것이었다.


 초기 의병운동의 무대는 왜놈들의 핍박으로 말미암아 만주로 옮겨졌지만, 마침내 제1차대전이 종결되고 강화회의에서 윌슨의 민족자결주의가 창도되자, 이 기회를 포착하여 조선문제를 국제회의에 상정시키려고 3.1운동을 일으키고 독립을 선포했던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 먼로주의로 여전히 불간섭이요, 영국은 제국주의라 오히려 일본에 동정하는데, 이웃 중국인 봉건체제 타파를 통한 민주혁명, 반식민지적 지위의 지양을 위하여 만신창이의 고투를 계속하고 있는 중이었으니, 우리는 역시 고립무원이었다. 게다가 왜놈의 잔악한 탄압이 날로 심해지므로, 국내에서는 얼마 안 되어 벌써 우리 민족운동을 그대로 유지할 수가 없게 되었다.


 바로 이때 우리와 북방에 경계를 접하고 지리적으로 가까운 혁명 러시아는 가장 열렬한 혁명적 언사로 약소민족의 해방을 부르짖었으므로, 동정에 굶주린 전 세계 피악박 민족들이 이 세기적 구호에 열광적으로 호응.지지해 그 기세가 자못 당당했던 것이다. 한편 우리의 형편은 바로 토지와 자본의 대부분이 일본인 소유로 변했고, 반대로 전 인구의 8할 이상을 점한 농민은 대부분 무산자로 전락해 버렸다.


 그리하여 적극적으로 원조한다는 자의 원조를 받아 일본제국주의의 무력과 재력을 몰아낼 양으로, 막연한 희망을 걸고 수많은 민족주의자들이 공산주의를 내걸게 되어, 일시 국내외를 통하여 민족운동이 공산운동으로 변한 감이 있었다.


 왜놈들은 이 기회를 민족 역량의 상괘에 이용하려고, 초기 공산운동을 어느 정도 묵인하고 은근히 추파를 보내 가면서 민족운동의 분열 내지는 계급투쟁의 도발에 애썼던 것이다.


 그러나 대체로 우리의 공산운동은 민족운동의 변형된 형태로서 충실했으니, 소련의 연방화 운동이 아니라 오직 우리 민족이 왜놈의 손에서 벗어나 독립하려는 반(反)일본제국주의 운동이었다. 즉 우리 민족의 일본 민족에 대한 투쟁이었다. 다만 여기서 유감인 것은 이 운동의 출발과 그 과정에서 약간의 사대주의적인 몰비판적인 의타 근성과 당파적 할거심, 또는 계급적 보복의식의 작용을 탈피하지 못했다는 점이니, 이것이 8.15 이후 새로운 국제적 제약 속에서 조장되어 오늘날과 같이 반민족적 경향을 명백히 하게 된 것은 참 생각 밖의 일로 슬픈 사실이다.


 민족운동이 일시 공산운동으로 변한 감이 있었다고 했는데, 그것은 그러한 감이 있었을 뿐이요, 해외에는 끝까지 그대로 민족주의를 내걸고 싸운 민족운동도 역시 존속하였다.


 그리하여 민주주의 연합제국으로 하여금 ‘카이로’에서 조선의 독립을 공약케 한 것은, 일면 확실히 36년간 부단히 지속한 우리의 일제 침략에 대한 민족적 반항, 민족적 투쟁으로 인해 나타난 남한테 매이지 않고 독립하려는 우리의 민족의식에 대한 국제적 확인임에 틀림없다. 그들이 만약 우리의 민족적 갈망이 자주독립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면 우리에게 독립을 공약할 리 만무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모든 민족적 혁명운동이 8.15 이후 우리 민족의 역량을 옳게 집결해 통일 건국으로 이끌어 나가지 못했다는 뚜렷한 사실은 혁명운동 전선에 섰던 한 사람으로서 나도 깊은 책임을 느끼는 바이다.


 더욱이 오늘날 우리는 새로운 국제적 제약 속에 있다. 우리 민족의 완전한 해방을 위한 우리의 투쟁, 우리의 혁명운동은 아직 종결될 날이 멀었다. 우리는 아직 부흥과 재멸의 기로에 서 있는 것이다.


 요는 우리가 앞으로 잘 싸우느냐 잘 싸우지 못하느냐에 달려 있다. 우리는 형편에 따라 우리를 제약하는 외부의 힘에 대해 거부, 저항, 불합작, 협조 모두 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처해 있는 현실을 똑바로 인식하고, 여기에서 우리의 민족적 발전을 가장 타당하게 보장할 수 있는 올바른 전략을 세우고, 그 위에 공고한 민족적 결속을 이루며 항상 민족의 역량을 최대한 동원.집결하여 당면한 목표를 성취하는 데 견결히 분투 노력해 나간다면, 언젠가 우리에게 반드시 영광스러운 부흥의 날이 올 것이나, 그렇지 못하면 우리에겐 영영 불행이 남을 것이다.

 

 한 민족의 멸망 과정은 언제나 그 민족의식이 완전히 말살됨으로써 종결 된다. 민족의식이 살아 있는 동안 그 민족은 완전히 멸망했다고 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침략할 때에는 궁극적으로 그 민족의식의 말살에 주력을 경주하는 것이 상례다. 그리하여 그 민족의 생명의 표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문화가 전면적으로 봉쇄당하게 된다. 제정 러시아는 폴란드를 침략했을 때 폴란드 민족이 그들의 말을 쓰는 것을 엄한 형벌로 금했다. 왜놈도 우리 조선 민족을 철저히 노예화하기 위해 마음대로 우리 역사를 뜯어 고치고 바꿔 꾸몄던 것이다.


 ‘스사노오노미코토’가 단군이라고도 했고, 백제에서 문물이 일본으로 들어간 것을 일본에서 백제로 문물이 건너왔다고도 했고, 심지어는 백제의 유명한 인사, 용사, 열녀가 다 왜놈이라고 하며, 낙화암의 사화를 왜놈들이 백제의 고관으로 있다가 백제가 망하게 되니까 그 가족들이 낙화암에서 투신한 것이라고까지 말하지 않았던가. 그뿐인가. 마지막에는 왜말을 강요하고 우리의 자연스러운 민족의식의 발로를 티끌만치도 용서하지 않았고 우리의 성명까지도 빼앗았던 것이다.


 침략당한 민족은 이런 역경에서 자칫하면 영합주의로 나가 민족의식을 잃고 자체 멸망을 재촉하는 수도 있다.


 우리 민족 사회도 왜정시대, 특히 그 말기에 이르러서는 이러한 경향이 없지 않았다. 파렴치한 반역도배들은, 동포가 갈수록 더욱 참지 못할 노예 지경에 허덕이는데, 민족을 팔아 얻은, 배부른 특권 냄새 나는 더러운 입으로 왜놈은 천손 민족이요 ‘팔굉일우’니 ‘일시동인’이니 ‘내선일체’니 하면서 황민화 예찬에 오히려 영일이 없었는지라, 안으로 민족의 역사에 무지하고 밖으로 세계 대세에 어두울 수 밖에 없는 철모르는 젊은 세대로 하여금 모두 노예이면서도 자기가 노예인 줄 의식하지 못하는 노예, 자기를 스스로 열등하다고 생각하며 노예의 현실을 긍정하는 노예, 노예로서의 이용가치로 보아 다른 노예들보다 약간 낫게 대우해 주는 데 만족하여 그것을 즐겨 받자고 날뛰는 가련한 노예로 만들고 말 뻔했던 것이다. 어찌 전율할 일이 아니겠는가.


 1년에 4시가 있고 일생에 노소가 있으며, ‘무만년불후지목’ (無萬年不朽之木 : 만년 동안 썩지 않는 나무 없고)이요, ‘무백년불사지인’ (無百年不死之人 : 백년 동안 죽지 않는 사람도 없다)이라 한다. 이 지구는 우주의 근본 원리를 어기지 못하는 법이고 인간 사회도 대자연의 일부이거니와, 민족의 역사에도 진퇴가 있음은 생리상 차라리 당연한 일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새삼스레 명심할 것은 민족 역사의 진퇴는 민족의식의 강약.허실과 언제나 서로 부합되어 왔다는 사실이다.


 민족의식이 약하면 한 민족으로서 다른 민족에게 침략당하거나 다른 민족보다 뒤떨어진 위치나 낮은 지위에 처했더라도 그 민족은 강렬한 반항의식이나 향상의지를 갖추지 못할 것이며, 민족의식이 한번 파괴되면 노예도 좋고 노예의 노예 또한 못 견뎌낼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에게는 또다시 개탄할 지극히 우려스러운 사태가 벌어지고 있으니, 의식적으로 민족의식을 말살 또는 파괴하려는 경향이 그 하나요, 입으로는 민족정신의 발양과 민족자결의 실현을 항상 고창하면서도 행동에 있어서는 민족의식을 헌신짝같이 내버리고 돌보지 않는 경향이 다른 하나이다.


 이것은 모두 밝히고 보면 민족의식에 대한 몽매와 미숙성에서 오는 것이라, 불우한 운명적.지정학적 조건으로 말미암아 늘 강대한 민족들에게 둘러싸여 끊임없는 외침 속에서 비비고 살아온 우리 민족사의 슬픈 일면의 소산이라고 하는데, 8.15 이후로 말하면 미소 양국이 분할.주둔하게 된 데서 이러한 폐단이 더욱더 도발되고 조장되고 있는 것이다.


 예전의 우리나라 공산주의 운동가들은 그렇지 않았건만, 오늘날의 공산주의자들은 함부로 민족을 부인하고 또 민족과 조국을 부인하려고 드니 딱한 노릇이다.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공산주의의 나라 소련의 세계주의는 오늘날 어떻게 되었는가. 독일의 침략을 당하게 되자 소련의 독재자는 어제까지의 모든 세계주의적 테제를 철수하고 현명하게도 “슬라브 민족은 조국의 방위를 위해 싸우라”고 외쳤고, 슬라브 민족영웅의 노래를 보급시켰던 것이다. 소련이 건국 초기에 양심적으로 세계주의를 실천하는 척하며 각 종족에게 평등하게 권리를 부여한 것은 세계의 동정을 얻고 약소 민족의 환심을 사기 위한 일종의 연극이었다고 볼 수 있으니, 지금은 완전히 슬라브 민족의 독재로 다른 약소민족의 자유는 미국에서 흑인들이 높은 지위에 있지 않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전후 그들의 입으로 다시 세계주의를 내세우고 각국의 공산당을 조종하여 흡사 세계주의적인 듯한 공작을 진행시키고 있는 것은, 타민족의 민족의식을 말살시킴으로써 슬라브 민족의 침략적 민족주의를 세계적으로 실현해 보려는 야심적인 흉계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질 공산주의자들이 자기들의 과오를 청산하지 못하고 의연히 민족의식을 파괴.말살하려는 음험한 노력을 계속한다면, 이들은 무시무시한 침략자의 하수인.졸도요, 친일파.민족반역자의 저주할 전통을 가장 충실하게 계승하는 자요, 매국노라고 불러 마땅할 것이다. ‘자모지후’(自侮之後 : 스스로 업신 여기면)에 ‘인필모지’(人必侮之 : 남들도 반드시 업신여긴다)라 하거늘, 제 민족보다 남의 민족을 더 위하는 나라를 어디서 보고 민족 차별이 없는 나라를 어디서 보았다고, 자주독립을 걸고 의타.예종을 일삼으려 하니 이들이야말로 민족의 독충이 아니고 무엇이랴.


그 민족의식을 말살하려는 일도 없고 또 파괴하려는 일도 없으나 은근히 우리의 민족 됨을 수치로 여기어 남의 민족이 돼 보려고 애쓰는 부류, 혹은 민족의식을 갖지 못한 것은 아니되 사실인즉 언제나 타민족의 압력이면 덮어놓고 추종하려는 또 하나의 부류가 있는 것이다. 이들도 역시 필경 공산주의자와 오십보 백보라 하겠다.

 

 민족의식은 민족의 의지와 예지와 정열의 결정이다. 그리하여 민족의식은 민족적 결속, 민족적 투쟁의 원천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루빨리 민족의식의 미숙과 몽매로부터 벗어나야 할 것이며, 나아가 민족의식이 연마에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미숙과 몽매 - 이것은 우리 민족 발전의 역사와 아울러 역사 발전의 본질을 습득하여 역사의 정신으로 자기의 정신을 삼을 때, 민족의 행복으로 자기의 행복을 삼을 때 비로소 버릴 수 있을 것이니, 우리의 형편은 이를 지극히 곤란하게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것을 극복하고 나아가야만 한다. 그렇게 해야만 민족의 자유와 독립과 번영이 약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첫째, 일본제국주의가 물러가고 당장에 독립이 되는 걸로만 믿었던 이 땅에 뚜렷이 다시 외력의 제약이 존재하게 되니, 벌써 “우리는 외력의 질곡을 벗어나서 살 수 없다”는 가련한 비관적 단념이 생기게 되었다. 여기에 우리의 슬픈 역사는 무게를 더 가했다. 이러한 단념의 중압하에서는 순수.열렬한 민족의식이 불타오르는 것은 도저히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정신적으로 벌써 노예가 되었는데 거기에 무슨 진지한 향상의 의욕이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의 견결한 민족적 투쟁은 마침내 우리로 하여금 외력의 질곡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할 것이요, 세계의 주권을 가진 다른 민족들과 더불어 평등한 지위에 오르게 할 것이다.


 이것은 역사를 달관했다면 더 의심할 나위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전술한 것과 같은 무기력한 노예적 단념을 버리고 부흥하려는 민족의 싱싱한 기상을 진작시켜야 한다.


 둘째, 이것도 민족의 존재가 떳떳하지 못한 탓이 많지만, 우리에게는 개인의식이 민족의식에 앞서는 경우가 많다. 개인의식이 앞서는 데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개인의 감정이나 기분 그렇지 않으면 개인의 이익, 즉 권세나 명예, 재산, 향락에 대한 개인의 욕심이 존중되어야 할 것이다. 민족의 복리와 이런 것이 배치될 때에는 물론 민족의 복리는 박대를 받아야 할 것이다. 그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것이 과연 될 일이겠는가? 이러한 개인의식이 확대되고 집결되면 드디어 민족의식과 대립되는 당파의식이며 계급의식이 생기게 되고, 또 민족복리에 반역하는 당파이익이며 계급이익이 뻔뻔스럽게 대두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그 민족은 마지막이다.


 역사는 힘이다. 개인적 또는 계급적 주관에 사로잡혀 역사적 객관을 망각해서는 안된다.


 과거 족속의 복리를 떠난 역사가 없었거니와 지금까지 민족의 복리를 떠난 역사의 회전 또한 없는 것이다. 오늘의 현실도 분명히 민족과 민족의 복리를 위한 투쟁이 역사의 주류요, 개인과 개인간의 이익을 위한 투쟁은 더 말할 것도 없고 계급과 계급간의 이익을 위한 투쟁 같은 것도 다만 민족 내부의 문제에 그치는 것이다.


 역사의 주류의 투쟁에 전력을 다하지 않고, 오히려 역사의 주류의 투쟁에 참가할 주체의 내부에서 주체의 역량을 분산시키고 상쇄시키는 투쟁에만 맹목적으로 열중하는 자는 마침내 완전히 역사의 낙오자, 역사의 패배자가 되고 말 것이다. 역사는 의당 이렇게 심판할 것이다.  그 민족은 멸망할 것이다. 민족이 멸망하고 민족이 분열된 뒤에 망국민에게 개인이나 당파, 계급의 영화가 있어 봐야 얼마나 찬란하겠는가.


 우리는 먼저 개인의식이 창궐하는 것을 철저하게 소탕해야 한다. 민족의 복리를 위한 투쟁의 길이 아무리 요원하고 험난할지라도, 우리는 이것을 배반하고 구차하게 개인의 이익을 꾀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언제나 건전한 민족의식으로 자기의 정신을 무장해야 한다.


 여기서 나는 민족의식이 경이할 만한 위력을 보여준 것으로 유태 민족의 예를 들고 싶다. 실로 기적 같은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 민족에게는 무시할 수 없는 민족적 결함도 있지만, 그들의 민족의식에는 경복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망국 2천년 후에도 하느님의 선민이라는 자부를 가진 그들의 민족의식에는 조금도 변함이 없다. 그들은 전 세계에 뿔뿔이 흩어져 있지만 그들의 결속은 무서운 것으로 우리 민족과는 같지 않다. 그들은 지배자이지 도제일 수 없다. 심지어 공산주의의 나라 소련에서까지 그들은 대체로 그렇다. 맑스, 트로츠키 등이 유태인이었던 것을 보면 그들은 세계를 사상적ㆍ정치적으로 지배해 볼 야심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제1차 대전에 패전한 독일도 10여 년 후에는 벌써 유태인의 천지가 돼 버렸던 것이다. 그래서 나치의 발흥도 우연한 것은 아니었다.


 지금 미국 월가에서도 그들은 세계의 금융자본을 거의 한 손에 장악하고 있으며, 상해 같은 곳에서도 유태인은 금융계의 왕좌에 앉아 있다. 그들은 민족의 혈통을 지키기 위해 타민족의 여자와 결혼하지 않으나, 정책적 수단으로 자기 민족의 여자는 타민족의 남자에게 많이 결혼을 시킨다.


 그들은 절대로 멸망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요지부동의 민족의식이 있고, 이에 근거한 공고한 민족적 결속이 있고, 민족의 복리를 위한 집요한 투쟁이 있기 때문이다.

 유대 민족의 세계 지배가 인류에게 커다한 불행을 초래하게 될지라도, 우리는 냉정한 어조로 “유태 민족은 세계를 전면적으로 지배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말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철저하고 건전한 민족의식은 자기 민족의 역사와 전통을 잘 인식하는 데서 성장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먼저 우리 민족이 과연 어떤 민족인가를 똑바로 파악해야 한다.


 앞에서도 약간 말한 바 있지만 우리는 단일 혈통의 민족이다. 이 사실이 우리 민족의 본질적 성격을 규정한다. 물론 우리 민족도 장구한 역사 발전의 과정에서 주위의 여러 족속들로부터 약간의 피를 받은 적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서해바다에 한 컵의 물을 부어 넣은 것이나 다름이 없어서, 민족의 순결한 혈통을 흐리게 하는 것은 아니었으며, 그것은 시간의 경과와 더불어 정화돼 왔으니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는 독일의 히틀러가 억지로 순혈 운동을 벌였던 일을 기억하고 있다. 그것은 독일 민족 형성의 역사적 배경으로 보아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긴 했지만, 현실적으로 유태인을 배척함으로써 민족적 결속에는 심대한 효과가 있었다. 이 하나의 산 실례만 보더라도 피의 순결이라는 것이 얼마나 존귀하고 중요한 것인가를 알 수 있는 것이니, 우리도 이런 점에서 우리 자신을 충분히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또한 단일한 혈통을 가진 우리 족속은 수천년 동안 별로 큰 변동 없이 같은 영역에서 살면서 민족을 형성하고 오늘날에 이르렀다. 우리는 조상의 분신이요, 우리의 조상들은 이 땅 위에서 동일한 운명 아래 생성ㆍ발전을 위하여 장구한 세월을 부단히 투쟁해 왔고 또 죽어서는 이 땅 속에 묻혔다. 그네들의 몸뚱이는 썩어서 이 땅의 흙이 되었다. 이 땅의 거름이 되었다. 이 땅의 곡식은 조상의 살이 썩어 된 그 거름으로 자랐고, 우리는 그 덕분에 기름진 곡식을 먹고 살아온 것이다.


 여기서 우리 민족은 정감적으로 서로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게 깊이 얽히고 말았다. 이와 같이 농후한 동포적 정애는 혈류의 혼잡이 극심한 유럽 민족들이나 또 근대 문화의 힘으로 급속하게 형성된 아메리카 민족에서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우리의 특징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끼리 같이 있을 적에는 혹 서로 깊고 생생한 정애를 느끼는 경우가 적을지도 모르나, 우리가 한번 서로 떨어져 있어 보면 모든 것은 분명해질 것이다.


 남북이 두절되어 있는 오늘날 우리는 얼마나 북한 동포들의 일을 걱정하고 그 소식을 몰라서 안타까워하고 또 그들을 그리워하는가. 그들도 얼마나 우리의 일을 궁금해하고 우리를 그리워할 것인가?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가 제 민족을 떠나서 이민족 속에 들어가 보면 민족의 향수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가를 체험할 수 있게 된다.


 이역에 나가서 이민족에게 모욕이나 당하고 보면 민족적 정서는 가장 고조될 것이다. 나는 어려서 중국사관학교에 다닐 적에 교수가 우리 민족을 모욕하는 언사를 쓰는 것을 보고, 참지 못해 그 교수에게 먹물 병을 던진 일이 있다. 상관을 치면 보통 총살이었지만, 그런 것을 생각할 여유 없이 복받치는 것이 감정이었다. 또 해방 직후인 8월 17일에 비행기를 타고 중국 서안을 떠나서 8시간 만에 서해를 건너 그리운 고국산천과 오막살이 늘어선 한강변 경치를 바라보게 될 때, 거기 흰 옷의 동포들이 왕래하는 형상을 내려다보게 될 때 나의 정서야말로 필설로 다할 수 없는 것이었다. 역시 해뱅된 해의 일이지만 나는 서안에서 추석날 밤에 어린애들이 동요를 노래하는 서울방송을 듣고 너무 감격해 까무러친 일도 있었다.


 대저 정감이라는 것, 정서라는 것은 반드시 사리에 합당한 것은 아니지만, 짙은 민족적 정서와 뜨거운 동포적 정애는 분명히 우리에게 강인하고 진정한 민족의식을 양성할 수 있는 비옥한 소지를 제공하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 민족의 역사는 또한 우리가 남만 못하지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


 아득한 고대로부터 우리 민족은 항시 외부의 위협을 받았으나, 그것을 뚫고 오늘날까지 엄연히 민족적 생활을 지켜 왔다.


 수양제의 수십만 대군의 거듭된 침공도 일격으로 분쇄하였고, 한나라나 당나라의 수십년의 침략도 물리치고야 말았고, 백년에 걸친 몽고의 침략도 우리 민족을 파괴하지는 못했다. 임진왜란에도 병자호란에도 또 지나간 일제의 학정에도 우리 민족은 굴복하지 않았다. 또 한때 흥성하던 시절에는 만주, 시베리아까지 판도를 넓힌 적도 있었다.


 어쨌든 우리의 조상들이 유약하거나 자아를 상실했던들 벌써 먼 과거에 우리 민족의 역사는 단절돼 버렸을 것이며, 오늘날 우리 민족의 또렷한 존재는 아무 데서도 찾아볼 수 없게 되었을 것이다. 다행히 우리의 선민들은 대체로 언제나 영용하였고 견결한 민족의식으로 깊이 결속할 줄 알았다.


 그리고 한편 우리는 위대한 덕성과 창조적 자질을 구비한 민족이니, 고래로 평화를 사랑하는 동방예의지국으로 널리 알려져 있거니와, 찬란한 예술이며 이조 때에 발명된 한글이나 거북선 등이 모두 이 자랑스러운 사실을 증명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제 명심할 것은 우리 민족의 역사를 관통하는 불굴의 자아에 입각한 이러한 영용성과 창발성은 틀림없이 우리에게도 얼마만큼 전수되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조상의 정신과 조상의 자질을 유전받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유전의 법칙을 의심할 수 없는 한 단일 혈통의 우리 민족에게 이것은 너무나 명확한 일이다.


우리는 단일 혈통의 민족이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조상으로부터 유전받은 존귀한 정신과 덕성과 우수한 자질이 있고 또 민족의식의 제고에 좋은 계기인 풍부한 민족정서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바로 포악한 왜정에 혹독하게 시달리고 난 후이기 때문에, 잠시 늙은 사람은 의식이 몽롱하고 젊은 사람은 의식이 미숙한 형편이지만, 이것은 노력하면 고칠 수 있는 것이고 이것만 고치면 민족의식은 반드시 강렬해질 것이며, 따라서 절대로 모든 일에서 타민족에게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세계는 넓고 인류는 그 수가 하도 많지만, 역사와 전통으로 보아 우리처럼 강건한 조건을 갖춘 민족은 다시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영원한 민족 생성 과정의 한 일원으로서, 과거의 온갖 유산을 계승하는 과거의 종말인 동시에 미래의 온갖 가치를 창조할 기점에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의무감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우리의 역사적.전통적 영광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 우리의 앞날을 더욱 빛나게 할 신성한 책임, 조상 천대에 대한 또 자손 만대에 대한 가장 엄중한 책임을 걸머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현실이 아무리 험난하고 여의치 않아 고생스러울지라도 또 공허하게 느껴질지라도, 그럴수록 현실이 홀연히 고립해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잇고 미래를 여는 계기로서 놓여 있다는 것을 통절하게 깨달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당연히 우리 자신이 그 역사적.사회적 일원인 민족의 진실한 발전을 위하여 우리의 전 생애를 바쳐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민족을 위하여 크게 공헌한 우리의 조상들을 숭배하는 것은, 그들이 갖은 곤란을 겪으면서도 그 당시 그들에게 부과된 의무를 다했거나 다하려고 끝까지 노력했기 때문이다.


 나는 미력하나마 숭배할 만한 조상들의 본을 받아 망국민의 치욕을 씻으려고 오늘날까지 애써 온 사람이다. 원수와 더불어 싸우고 싸우다가 몽고의 깊은 산 속에까지 피하지 않을 수 없는 운명의 슬픔도 맛보았고, 중국 영역 안에서 같은 우리나라 사람인 공산주의자들의 모략으로 의지하던 그 나라 정부에서까지 나에게 체포령을 내리게 되고, 한편 원수의 힘은 날로 증대되기만 해 내가 생명으로 삼아 오던 민족의 자유와 독립이라는 희망이 거의 사라지려고 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때에도 나는 중국 사람으로 변신하고 중국 군대에 잠입해 일본 주재 무관이 되려고 은밀하게 공작을 했다. 그러한 기도는 중일사변의 발발로 그만 좌절되었지만, 그 안에서 신용만 얻으면 소망대로 될 수도 있었던 것이니, 소망대로만 되었다면 일본 천황을 비롯한 수뇌부를 그들이 외국 문관과 서로 합석하는 기회에 권총으로 잘 쏘면 한꺼번에 소탕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로써 자유와 독립이 이루어지지는 않는다고 할지라도 민족의 정기는 당당히 발양되리라고 믿어서, 그것만이라도 해보려고 작정했던 것이다.


 결국 해외 망명 30년 동안 별로 한 일은 없으나, 5대 독자인 나로서는 개인적인 정에 얽매이지 않으려고 칠십 노부가 멀리 중국 땅으로 만나러 오신 것까지도 거절하고 끝까지 오직 민족을 위하여 싸웠다. 그것은 민족의 일원으로서 의무를 다하겠다는 굳은 결심에서였다.


 그리고 우리가 끝까지 잊어서는 안 될 또 하나의 일은 민족을 떠나서 개인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민족이 왜놈에게 굴복했을 때 다소 경중이 차는 있을지라도 누구나 다 그놈들의 종노릇을 했다. 종노릇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외족의 지배하에 있는 민족에게는 그 민족의 복리를 위한 법이 성립되지 않는 것이니, 따라서 개인의 인권이 보장될 리 없는 것이다. 한 밧줄에 묶인 운명이다. 우리는 유구한 과거와 미래에 대한 책임을 불문에 붙이고 다만 이 순간의 처지만으로도 민족의 운명을 개척하기 위해 살고 싸우고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우리끼리 서로 다투는 것은 가장 어리석은 일이다. 한쪽에 아주 나쁜 부류, 다시 말하면 민족의 복리에 스스로 반역하는 도당이 있어서 눈물을 머금고 우리가 이를 숙청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수는 있을지라도, 그렇지 않은 개인이나 집단들이 권세로 다투고 감정으로 다투어 그칠 줄을 모르는 것은 민족의 역량을 헛되이 소모할뿐더러, 심하면 오히려 그들이 서로 민족의 복리에 반역하는 죄과를 범하기에 이를지도 모르는 것이니, 이는 도저히 용인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가 우리의 견실하고 탁월한 내적 조건에서 양성할 수 있는 모든 민족적 역량을 기울여 최후까지 투쟁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될 대상은, 우리 민족의 복리를 유린하고 우리 민족의 자유와 독립을 부인해 우리 민족의 진정한 발전에 장애가 되는 온갖 세력 및 경향인데, 이러한 세력이나 경향은 본질적으로 민족 자체의 것일 수는 없는 것이니 반드시 침략한 남의 민족에게서 오는 것이다.


 다만 자체 안에 외부의 침략세력 또는 그러한 경향과 영합하고 결탁하는 소수의 반역적 계열이 있을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민족을 사랑하거나 민족의 자유와 독립을 원하는 모든 동포는 우리를 망치려는 힘과 꾸준하고 줄기차게 싸워 나가기 위해 사사로운 욕심을 버리고 결속할 줄 알아야 한다. 결속하는 데서만 큰 힘이 생기는 것이다.


 자아에 뿌리박은 집결된 역량의 부단한 제고와 발휘만이 우리 민족의 노예로의 전락을 방지하고 인류 내에서의 지위를 향상시켜, 우리 민족을 물심양면에서 온전하게 하며 명실상부한 자유와 독립의 세계로 이끌어 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사물을 똑바로 보아야 한다. 지금은 세계적으로 도도한 민족주의의 조류를 무시할 수 없는 시대다. 파시즘이 있었고 공산주의가 있고 민주주의가 있지만, 모두 다 기반은 민족 세력의 신장에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이 제 2차 세계대전에 적극적으로 참가하여 연합국을 승리로 인도하게 된 직접적 동기도 모족(母族) 앵글로색슨인 영국의 치명적인 위협을 제거하는 데 있었을 것이다.


 한편 이러한 강대국의 확장적 민족주의에 대해 또 아시아를 중심으로 하는 후진 민족의 자위적 민족주의 또한 날로 성장해 가고 있다.


 이때에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가 조선 민족임을 알자.

 

(1947년 6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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