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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충성 김

이범석 - 민족과 국가

최종 수정일: 6월 11일




인류 역사의 발전과정에서 국가기구의 탄생은 대체로 민족의 형성과 때를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국가나 민족이나 간에 인류 사회에 홀연히 생겨난 것이므로 우리는 더 멀리 그 기원을 소급할 수도 있겠지만, 여하튼 인류 사회가 이렇다 할 문화나 윤리를 갖추진 못한 씨족이나 종족 시대에 수장의 지배 하에 유목이나 수렵을 생업으로 삼던 때에는 국가라는 것이 없었다. 따라서 인류 사회가 대개 제각기 전통적 혈연을 기조로 독특한 영역과 문화를 소유해 민족을 형성할 즈음부터 비로소 국가기구가 발생하였다는 것은 틀림이 없겠다.


본시 민족은 인간이 자연의 위협과 다른 인간 또는 인간 집단의 침해를 방어하고, 나아가 생활을 향상시키려는 인간 본연의 욕구의 결과로서 가장 친근한 곳으로부터 사회적으로 발전한 과정의 필연적 산물이겠거니와, 국가의 발생은 이와 같은 필요라는 점에서 더 적극적인 의의를 갖는다.

인간이 살 도리를 찾아 민족을 형성한다 할지라도, 그들이 한 민족으로서 진정한 발전을 위해 질서 있고 권위 있는 민족적 행동을 취하지 못한다면 그들의 노력은 결국 수포로 돌아가고 말 것이다. 바로 질서 있고 권위 있는 민족적 행동을 이루기 위해 꼭 필요한 통제력과 자위력을 갖추고 등장한 것이 국가다. 이러한 의미에서 민족은 생존의 공동체, 국가는 생활의 공동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국가는 민족의 복리를 보장하기 위하여 권력을 집행하는, 즉 민족의 복리에 복무하는 기구이기 때문에, 필요하다면 권력 또는 무력을 발동해서라도 민족의 복리에 배반되는 내외의 온갖 요소를 배제하고 민족의 복리를 증진시키기 위해 제반 조치를 강구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이나 다른 국가의 지배하에 있을 때는 그들은 국가를 가질 수 없다. 국가라는 명목은 얻을지 모르나 실질적인 국가를 가질 수는 없다는 것이다. 남의 지배 하에 있는 민족에게는 진실로 그 민족 자체의 복리를 위해 권력을 집행하는 기구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다 알다시피 만주국은 국가의 이름은 가졌지만, 그것은 만주에 거주하는 몇 개 민족의 복리에 복무하는 기구가 아니라, 왜놈이 합리적으로 만주를 영유하고 만주에 거주하는 민족들을 지배하기 위해 그들의 국가로 가장한 것일 뿐 참다운 의미에서 국가는 아니었다. 국가란 본질적으로 독립된 주권의 소유자라는 성격을 띈 것이니, 이것은 어떠한 남의 권력의 지배도 받지 않는 자유로운 민족에게만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역사를 보면 우리는 복수의 민족으로 구성된 국가가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러나 이런 것은 몇 개 민족이 공통된 정치적 운명 아래에서 공통된 복리의 보장을 위해 국가를 만든 경우가 아니면, 한 민족으로 만들어진 국가가 그 민족의 복리를 증진시키기 위해 다른 민족을 자기의 국가권력 안에 흡수.예속시킨 것이다. 이 후자의 경우에는 이러한 국가는 어디까지나 지배민족을 위한 지배민족의 국가이지, 예속민족을 위한 예속민족의 국가가 아니다. 우리는 36년 동안 일본제국에 예속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일본제국이 결코 우리 민족의 국가가 아니었던 것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오늘날의 역사적 세계에 있어서 국가 없는 민족처럼 비참한 것은 없다. 자유로운 민족은 모두 독립된 국가를 이루고 있는 터로, 국가 주권을 갖지 못한 민족에게는 자유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직 이와 같이 부자유스러운, 구속된, 국가가 없는 민족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우리의 민족적 이상과 의욕이 있으니, 언제까지나 망국민으로서 나라 없는 설움 속에서 살아갈 수는 없다. 우리는 하루바삐 우리의 독립국가를 건립해야 하겠으므로, 과거와 현재를 통하여 혁명운동, 즉 진정한 민족적 독립을 위한 운동을 추동해 온 것이다.

우리가 만일 우리의 국가를 세우는 데 실패한다면, 우리 민족은 영영 노예 민족으로 전락해 멸망하고 만다는 것을 명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 우리가 반드시 우리의 국가를 세우려고 각오한다면, 우리는 자동적.의식적으로 민족국가의 위대한 건립을 위하여 일체의 정성과 역량을 바쳐 견실한 민족적 결속을 성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국가의 흥망성쇠가 민족의 흥망성쇠를 결정.상징하는 것인 동시에, 또한 집결.제고된 민족적 역량만이 국가를 건립.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렇게 하여 우리가 건립할 국가는 우리가 국가를 세우려는 기본 목적을 만족시킬 수 있는 국가, 즉 민족의 복리를 충분히 보장할 수 있는 국가라야 할 것이다. 우리가 세우는 국가라 할지라도 만약 민족의 복리를 보장하지 못하고 어떤 개인이나 어떤 집단의 특권을 옹호한다든가 혹은 어떤 다른 민족이나 다른 국가의 이익에 복종하는 국가라면, 그것은 어떤 개인이나 집단 또는 어떤 민족이나 국가를 위한 그들의 기구이지 우리 민족을 위한 우리 민족의 국가는 아닌 것이니, 우리가 민족국가를 세우려는 기본 목적에 배치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세우려는 국가는 완전한 주권국가인 동시에 우리 민족의 역사적 독자성과 현실적 환경에 비추어 반드시 단일 민족국가일 것이며, 또 제도적으로는 어떠한 집단적 특권도 허용치 않는, 따라서 주권은 삼천만 민족에게 있고 통치자와 피치자의 관계까지도 포함하여 온 동포가 정치적으로나 경제적.문화적으로 권리와 지위와 책임이 기본적으로 균등한 국가인 것이다. 이것이 ‘민족지상’의 국가 원리다.


나는 작년에 추풍령에 갔을 때 한 농가에 들어가 보았다. 그 집 안팎에는 부서진 항아리 하나밖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주인 내외는 몇 마지기 안 되는 논을 다루고 있었으니, 그것이 그들의 유일한 경제적 토대였다. 그 형편으로는 자녀의 교육은 고사하고 생활조차 의심스러웠다. 가정의 빈곤과 부득이 그에 수반하는 부모의 무관심으로 그 자녀까지도 무교육자가 되고 말 것을 생각하니 기가 막히는 일이었다. 교육이 없으면 그 자녀는 자연히 사회적으로 모든 기회에서 열등한 지위에 서게 될 것이다.

이래 가지고서야 어찌 건전한 민족적 발전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이것은 모두 과거 사회제도의 결함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와 같은 악폐를 내포한 사회제도를 근본적으로 개혁해, 참으로 민족 전체의 전면적인 균형.발전을 보장할 수 있는 민족국가를 건설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세계 역사의 발전에서 낙후를 면치 못할 것이다.

우리가 새로운 합리적인 사회제도를 마련하게 되면 그 제도 밑에서는 온 동포가 평등한 인격과 생활과 교양을 가지게 될 것이므로, 동포 간에 원칙적인 우열의 차별이라든가 계급적 모순이라든가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는 파벌의 대립 같은 것은 자연히 없어지고, 삼천만 전 민족으로 하여금 자유로운 발전의 길을 걷게 하고 진정한 애국사상을 제고시켜 우리 민족국가의 기반을 견고하게 할 것이다. 이것은 같은 동포끼리 모여서 구성하는 단일민족의 국가로서 당연한 일이며, 만약 이렇게 하지 않고 이렇게 되지 않는다면 단일 민족국가의 면목은 아무데서도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또 공산주의의 위협도 이렇게 해야만 방어할 수 있을 것이다. 소련의 공산주의가 각국의 사회제도의 결함을 역이용하여 기만적.궤변적인 유물사관을 주입하며, 특히 약소민족의 자아의식을 말살시켜 슬라브 민족의 전 인류에 대한 정치적 지배를 꾀하려는 것이 그 본질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우리 사회제도의 결함을 개혁하는 데 조금도 주저하거나 등한히 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국가, 이것은 아직 우리의 이상과 의욕 속에서만 존재하고 있다.

우리는 항상 ‘국가지상’ 또는 ‘국가를 위해서’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현실에 국가가 있다고 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국가 없는 우리에게는 우리의 국가가 지상의 요구이니 우리는 민족적 역량을 다하여 민족국가를 세워야 하겠다는 것이고, 또 민족국가를 세우기 위해 희생적.헌신적으로 분투하여야 하겠다는 뜻이다.


물론 과거에는 우리에게도 국가가 있었다. 그 국가는 적지 않은 결함을 가진 적도 있었지만, 대체로 우리 민족의 국가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그리하여 분명히 우리는 조국을 가졌던 민족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는 과거에 가졌던 국가, 즉 우리 조국의 역사를 계승해서 새로이 영원한 발전을 약속할, 벌써부터 우리가 이상과 의욕 속에 살고 있는 우리의 민족국가를 실현시킬 위대한 역사적 순간에 서 있는 것이다.


(1947년 8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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