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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충성 김

김형효 - 현대 한국인의 존재적 불행

최종 수정일: 2023년 10월 12일



현대 한국인의 존재적 불행이란 무엇인가? 이미 우리가 앞에서 보았듯이 불행한 의식이란 곧 처절한 분열의 경험이다. 헤겔적인 뜻에서 그러한 불행이란 자기 자신과의 찢어짐이요, 또한 타자와의 분열을 뜻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한 민족의 불행한 의식이란 민족 내부의 분열이요, 또한 타 민족과의 갈등인 것이다. 존재적 입장에서 비친 한민족의 상황적 불행이 무엇인가? 그것은 실존적 견지에서 한국인 자신으로부터의 분열이요, 민족적 견지에서 민족 내부의 갈등이요, 세계사적 입장에서 타 민족과의 열려진 통일을 회복하지 못한데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행의 존재적 의의는 실존적 그리고 민족적 존재의 파열을 뜻하므로 민족이나 개인(실존)에 있어서 불행한 의식은 의식이 스스로 자신의 고향을 발견하지 못하고 자기 것과 다른 세계 속으로 자기 의식을 조영해봄에 성립하는 것이다. 존재적 고민은 영혼의 소외화를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역사적 상황 속에서 거의 대륙 민족 및 일본에 대하여 자주의식과 패배의식이 복합 관계 속에서 형성되어 왔음을 보았다. 그러나 개화기 이후 서양 문물제도의 이타적 성격에 접함으로써 동양적 복합의식과 서양적 복합의식이 한꺼번에 한국인의 의식구조를 점령하게 되었다. 과거 한국인이 자주의식에의 집요한 요구에도 불구하고 대륙의 의식 속에서 자신의 존재적 위치를 정위하려고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개화기 이후 한국인은 서양적인 것 속에 자신을 조명시켜보려고 애썼던 것이다. 그러나 동양적인 것과 서양적인 것의 선택, 또는 매개를 위한 시기는 일제의 침략으로 좌절되어 우리는 존재적 자부심을 잃거나 또 때로는 반발로 허장성세하는 경우를 가져오게 했던 것이다.


이와 같이 한국인이 자기의 자기의 영혼을 외국적인 것의 영혼 속으로 몰입함으로써 한국인은 한국인의 영혼이나 그 영혼의 외부적 표현들(상업적, 언어적, 사회생활적)을 신용하려 하지 않고 한국인이 아닌 영혼 속에 그들의 존재적 신뢰를 두려고 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의 사회에서 존재적, 언어적(결국 같은 뜻이지만) 신용이 우리 한국인의 영혼 속에서 사라져가는 비극을 직면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비극은 한국인의 감정의 다원적 연관성을 나타내는 것이 결코 아니라 한국인의 감정의 분열과 대립, 그리고 전체의 불신에서 오는 새로운 숙명적 패배주의를 야기할 위험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한국인 자신의 자기 소외에서 오는 불신주의는 순진한 의식을 추방하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한국인이 자기 존재를 이타적인 것 속에 몰입시킴은 존재의 소외를 제기하지만 더 중요한 문제는 한국인이 자기의 존재적 의식, 그것의 고뇌를 아예 없애버리거나 또는 문제삼지 않으려는데 가장 큰 존재적 불행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형이상학적인 것에 가까운 고민의 제거는 곧 부르주아적인 근성의 만연에 기인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부르주아적 근성이란 형이상학적인 것을 형이하학적인 것으로 타락시킨다든가 또는 경제적 구조 속에서 초경제적 질서를 무시하는 태도를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부르주아적 사고는 인간의 존재를 양적 계산의 차원으로밖에 보지 않는 것이다. 얼마만큼 이윤과 생산 업적을 올릴 수 있는가 하는 기능만이 문제되는 것이다.


부르주아적 세계에 있어서 신앙은 기능이며 정의는 곧 양의 증대만을 위한 원칙인 것이다. 만약에 한 한국인이 이러한 세계 속에서 회의하면서 나의 존재 의의는 무엇이며. 무엇때문에 나는 존재해야 하는가 하는 설문을 스스로에게 던질때 그는 자신의 존재란 이미 증발한지 오래며 한갓 일을 처리하는 기능공에 지나지 않는다는 감정을 갖게 되리라. 그러나 기능공으로 탈바꿈하는 존재에 못지 않게 비극적인 것은 한국인의 존재가 화석처럼 굳어버린 교조의 표본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이것이 북한 인민의 존재적 불행이다. 더구나 존재의 교조화에서 오는 불행은 존재의 자유를 상대적으로 억압하는 수단으로 전락하게 되며 자유경쟁의 부르주아 사회에서는 존재가 상대적으로 자유스러운 기능공으로 탈바꿈된다.


넒은 의미에서 한국적 문화풍토가 기능 문화 우위로 양하고 존재문화를 가볍게 여김에서 한국인의 의식구조 속에 열려진 통일의 가능성은 감소된다. 왜냐하면 기능 문화의 본질은 단위적이며 자기 폐쇄적이고 자기 충족적이며 동일적 기능 안에서는 획일적인 성격을 띠고 다른 기능과의 관계에서는 조립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러 기능문화는 영혼의 존재적 본질인 너그러움을 알지 못하고 또 섬김의 정신도 알지 못한다. 너그러움과 포용력, 그리고 섬김의 융화가 없는 곳에 어떻게 통일이 있겠는가? 통일은 조립하고는 다르다. 기능 문화만이 팽배하는 곳에 의식의 분열, 그리고 경우에 따른 제품적 조립은 있을지언정 새로운 지양의 통일의식은 구하여지기 어려운 것이다.


-김형효, 《한국사상산고》에서 발췌 (1976)

댓글 1개

1 commento


Juns 준스
Juns 준스
16 ott 2023

한국 국민의 정신적 타락이 단지 자본주의 뿐만이 아닌, 우리의 서러운 외세 침탈의 역사 때문에 자주적인 선택과 의식을 만들지 못하였다는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네요. 그리고, 이것이 필자가 주장하는 통일 의식이 아닌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기능 의식만 갖게 된 이유가 됐다는 게 더욱 슬픔을 자아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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