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 작성자 사진충성 김

김형효 - 성혁명과 현대인의 소외현상


도피의 자궁인 도시 속에서 인간은 자신을 상실해 가고 있다. 현대 도시에는 모든 것이 다 있지만 동시에 황무지이기도 하다. 거기서 사람들은 사랑이나 우정이나 주의주장을 쉽게 그리고 빨리 만들어내지만 그런 것들은 빈껍데기에 불과하다. 침묵의 음악과 별들의 지혜로운 대화는 사라지고 단순히 소음과 흥분된 토론만이 도피를 재촉할 뿐이다. 참으로 사람들은 외로움을 느낀다. 그것도 어느 시기가 가면 끝장이 나는 외로움이 아니고 시작과 종말을 전혀 알지 못하는 외로움과 고독이다.


도시 속에 현대적 도피에서 인간이 느끼는 두번째의 큰 기분은 괴로움이다. 여기서 말하는 괴로움은 불안이나 고뇌나 불만족 등 모든 것이 합쳐진 감정의 소용돌이다. 자신의 내적인 명상에 의하여 이 이상 거대 도시의 소음과 발악적인 경쟁 속으로 도피하지 않고 또한 기계적인 사회체제의 희생물이 되지 않기를 자각한 실존은 이미 자기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허약감 속에서 자신의 투기를 좌절하고 마는 것이다.


현대 문명 속에서는 군중의 중요한 힘이 전부이기에 실존의 외침이 너무도 소란한 군중의 소리에 파묻혀 버리는 것을 절감하고 있다. 파스칼이 말한 생각하는 갈대는 허약하지만 그러나 우주의 무한 속에서 무한한 가능성의 꿈을 지닌 자부심 있는 갈대이다. 그러나 현대문명에서 자각한 실존은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는 베를렌의 가을 낙엽처럼 아무런 자부심도 없이 허무 속에서 방황하게 되는 것이다.


자각한 실존만이 괴로움을 당하는 것이 아니다. 살기 위하여 발버둥치는 모든 공무원이나 월급쟁이, 장사하는 상인도 다른 종류의 괴로움 속에서 녹슬어가는 것이다. 현대의 거대도시는 양산(量産)의 도시이고 또한 기술의 도시이다. 내가 돈을 벌지 못하면 그 도시 안에서는 살 수도 없고 도피할 수 있는 길도 끊어져 버리기 때문에 돈을 벌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불안하다. 남이 나보다 더 좋은 집을 짓고 또 나는 버스를 타는데 옆집 사람은 자가용에 번듯하게 기대서 오만스럽게 주위를 넘겨다볼때 질투와 시샘, 그리고 돈을 찾아 헤매는 불안이 겹쳐지는 것이다. 그런 것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또 어떤 사회에서는 사회보장제도가 아주 발달되어서 일정한 나이가 지나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현대의 거대 도시는 그러한 여가를 지닌 인간을 권태로 몰아넣고 있다. 농촌 문명시대에 인간이 전원 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 때에는 비록 많은 여가를 가지지는 못했지만 그러나 권태는 몰랐다. 권태가 주는 괴로움은 결국 자신이 이 세상에 있는 존재 의의를 망각하게 한다. 자살이다. 그러나 그 자살은 애매한 타살이다.


이른바 합리적인 위선이 현대문명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구석에 군림하고 있는 것이다. 합리적인 위선과 그 위선이 자신을 스스로 꾸미고 있는 이데올로기와 관념의 미사여구 아래 자신도 모르게 병들어가는 인간은 섹스 속에서 그 증세가 생기고 섹스 속에서 병을 치유하려고 한다. 왜냐하면 이미 우리가 본 바와 같이 섹스는 가장 원시적으로 인간이 세계와의 관계에서 정립되는 인간적인 지향이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현대문명과 그 제도 및 사고방식에 대한 도전을 알리는 모든 운동은 결코 섹스와 떨어져서 이해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간이 정신적으로 병들어서 좌절되어 버리거나 또는 그 병에서 쾌유하려는 모든 과정이 섹스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듯이, 현대문명에서 구토를 느낀 자는 이미 기성의 섹스 관계에서 구토를 체험한 자이다.


모라토리엄운동, 히피족의 모든 현상, 현대 도시 속에서 느끼는 모든 성적 충동의 기회는 외로움과 괴로움을 보상해주는 술이다. 그러나 술은 천사와 같기도 하고 악마와 같기도 한 이중적인 힘을 지니고 있는 미약과도 같은 것이다. 현대 거대 도시 속으로 도피하는 인간은 도피의 상황 속에서 원시적으로 섹스를 찾고 또 섹스 속에서 미치게 되는 것이다.


(중략)


하여튼 인간이란 그 실존의 시원적 양식에서 성적 존재인데, 현대 도시문명으로 도피하려는 인간은 도피 도중에서 느끼는 공허와 외로움과 권태로움을 메우기 위하여 몸부림친다. 그런데 섹스는 인간의 공존을 가리키는 최초의 솔직한 표현이다. 현대인의 섹스는 공존의 차분한 분위기에서 영속적으로 전개되지 않으며 도시에서 도피하는 인간이 순간적으로 느끼는 섹스 속에서 자신의 고독함을 잊으려고 찾는다. 그러한 순간적인 섹스의 추구는 실존철학에서 강조하듯 자유로운 결단에 의하여 자유의식으로서 행동한다기보다 오히려 현대 도시문명의 구조가 개인을 그렇게 형성시켰다고 함이 더 타당하다.


섹스의 순간적인 추구는 현대인의 술이요 위안이요, 또한 생활의 미학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요컨대 현대문명에 의하여 구조적으로 영향을 받고 거기서 붙어살아야 하는 모든 인간은 차분한 섹스의 표현에서 흥분되고 미친득한 섹스의 표현으로 점점 옮겨가고 있는 것이다. 사회구조상으로도 어떤 사회는 섹스에 미친 정도가 강하고 또 다른 사회는 과도기에 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섹스에 미쳐있는 도시인이 정신현상과 그 구조는 매우 함축적인 의미들을 갖고 있다.


- 월간 《세대》, 1970년 8월호에 게재

Comments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