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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충성 김

김대환 - 주체의식과 정신문화의 창달

최종 수정일: 2월 20일



개인이나 집단에 있어서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려는 충동은 거의 본능적인 속성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확대하여 국가와 민족의 차원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기에 개인의 차원에서 민족의 차원에서나 주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은 긴 인류의 역사 속에 명확히 점철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근자에 이르러 우리의 생활주변에서도 주체성확립 또는 자주성회복이니 하는 말들이 빈번히 오가고 있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 우리는 제2차대전의 종말과 함께 일본통치로부터 해방이 되었지만 그것마저도 우리 민족의 자주적 역량에 의한 자위적(自衛的)인 것이 아니었다. 미(美)ㆍ소(蘇) 등 연합국의 승리에 의한 주어진 해방이었다. 그러한 역사적 체험은 본원적으로 한국민의 주체의식을 내면적으로 모호한 것으로 정립케 하는 소인이 되었다. 남북의 부자연스러운 분단 자체가 곧 그것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그 후 한국동란을 겪는 과정에서 우리는 동란 자체를 자체적(自體的)으로 처리하지 못했으며, 전후 의 부흥도 또한 외국의 원조에 의존치 않으면 안되는 과정을 겪었다. 그러한 역사적 과정은 확실히 우리의 가치지향이나 생활의식을 외부의존적인 것으로 이끌게 했다.


그 모든 과정은 우리의 문화풍토를 무풍지대로 만들면서 정신문화 특히 기존의 전통문화를 궁지로 몰았다. 많은 지적 엘리트에 의한 적극적인 서구문화의 심취는 기존의 전통문화를 무가치한 것으로 낙인찍음으로써 이땅에 서구의 문물을 어떤 문체적 (文體的) 선택없이 전파하는데 능동성을 발휘케 하였다. 그것은 교육의 보편화를 통해 더욱 가속케 되었다.


(중략)


우리 민족은 고래(古來)로 물질문명보다 정신문화를 존중하면서 역사를 이어온 것이다. 우리 조상은 비록 물질적으로는 가난하였지만 그러나 정신적으로는 풍요하게 살아왔다. 그러한 정신문화의 기조는 곧 강인한 주체의식이었다. 강대국의 세력의 틈바구니 속에서도 용하게 우리 민족이 갖는 단일성, 즉 단일민족으로서의 단일문화를 유지, 존속 시켜온 것은 어떤 힘에 바탕한 것이었을까? 그것은 결코 우리가 갖는 물질적인 힘도 아니었고 또한 강대국이 우리에게 베푼 아량(雅量)도 아니었다. 그것은 오직 우리가 갖는 강렬한 주체의식이었다. 결코 강대국의 내례(內隸)가 되지 않으려는 스스로 자기의 운명을 자율적으로 결정하려는 자주의식이었다. 그것은 중국도 소련도 일본도 막강한 그들의 힘을 가지고 실현할 수 없었음을 사실들은 명시해 주고 있다.


그러한 주체의식과 자주정신은 우리의 역사, 우리의 전통 그리고 우리의 정신문화 속에 간직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난 반세기동안 우리의 정신문화를 소홀히 다루었다. 우리의 정신문화는 전근대적인 것, 반봉건적인 것, 유교적인 것, 그런가 하면 일제의 잔재(殘滓)라는 이름 아래 아무런 가치조차 없는 버려야 할 것처럼 다루어 왔다. 그것은 곧 구미(歐美)의 것이 우리보다 우선하고 수일(秀逸)하다는 문화적 사대주의를 낳았다. 그러한 속에 우리는 우리 문화에 대한 자랑도 자신도 잃게 되었다. 그나머지 우리는 우리 문화에 대한 열등감마저 품게 되었다. 그러한 생활풍조와 가치판단은 교육을 적게 받은 사람보다 교육을 보다 많이 받은 사람들이 더 많고 농촌사람보다 도시사람들이 더 많음을 알 수 있다. 그 나머지 우리는 경제적 풍요를 얻는 대신 정신적 가치를 잃어가게 되었고, 그러한 정신적 가치의 상실은 우리의 조상 전래의 강인한 자주정신과 주체의식을 퇴색시켜 가는듯 하였다.


그러나 박대통령각하의 강한 자주의식은 국민들의 저변(底邊)의 심성에 간직된 자주정신과 상통함으로써 주체의식을 자각하는 싹을 돋게 하였다. 민족적 주체의식의 확립, 국적있는 교육, 근면, 자조, 협동의 새마을정신, 한국적 민족주의의 이념 속에서 그러한 정신적 지향은 충분(充히 함축되어 있다 하겠다.


우리는 단순히 물량적으로만 잘 살 것이 아니라 정신적으로는 확고한 자의식을 간직하면서 우리에게 주어진 역사적 과업을 하나 하나 충실히 수행해가고 있다. 오늘날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자발적으로 일기 시작한 역사, 고전(古典), 민속(民俗), 전통 등 국학(國學)에 대한 비상한 관심은 바로 그러한 심리적 성향을 시사(示唆)해 주는 것이라 하겠다. 그것은 교육을 통해 고취되었다기보다 자율적으로 파생한 자각이라 하겠다.


주체의식와 함양과 정신문화의 창달은 깊은 상관성을 갖고 있다. 또한 주체의식은 자아에 대한 자각과 함께 역사와 민족에 대한 재인식에서 비롯된다 하겠다. 우리는 지난날 자립의 터전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속에 경제적ㆍ군사적인 외부의존 속에 살아왔지만 이제 경제적 자립(自立)과 군사적 자주(自主)를 공고히 해가고 있다. 그러한 자립의 기반은 우리의 자의식을 길렀으며, 그러한 자의식은 자유의 확고한 기반 구축이 될 것이다. 지난날 우리는 그러한 자의식이 없이 그냥 자유만을 향유하려 했다. 그 결과 자유는 앞세웠지만 거기에 따른 책임과 봉사를 소홀히 하였다. 책임과 봉사가 없는 자유는 자칫하면 방종(放縱)과 이기(利己)를 낳게 한다. 우리에 게는 책임있고 규범있는 자유가 필요하다. 거기에서 질서가 마련될 수 있다. 8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우리는 보다 자각되고 책임있는 규범적 자유가 정립되어야 할 줄 안다. 형식적이고 졸상적(拙象的)인 자유가 아니고 내실있고 구체적인 자유이다. 그러한 자유는 새로운 정신문화와 가치관을 배타케 할 것이다. 물질만능의 사고에서 벗어나 우리가 전통적으로 지녀온 성실하고도 신의있는 애정과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윤리가 정립게 될 것이다.


이웃과 친구 그리고 부자, 부부, 사제 등 모든 인간관계에서 협동과 이해가 유대가 되어 따뜻한 인화(人和)가 마련되어져야 할 것이다. 그것은 곧 구미적(歐美的)인 이기주의를 극복하는 길이 되는 것이다. 거기에서 우리는 민족적인 유대(紐帶)와 통합이 자생(自生)케 될 것이며, 국가와 개인간의 보다 높은 차원의 일체감을 찾게될 것이다. 인종도 문화도 역사도 제각기 달리 하는 다양양(多樣壤)과 이질성(異質性)을 본질로 하는 구미시민사회와는 달리 단일민족, 단일문화를 바탕하는 역사의식에의 재인식이 비롯되게 될 것이다. 그러한 역사의식은 곧 역사와 문화에 대한 자각을 불러일으키게 할 것이다. 오늘날 강조되어지고 있는 충효의 사상도 그런 뜻에서 생각할 때 그것은 결코 봉건적인 윤리나 인간관계를 되살리려는것이 아니고 구미의 합리주의적 인간관계와 우리의 전통의 미덕을 조화시켜 새로운 인간관계를 구현코자 하는데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러한 정신문화속에서 질서와 안정과 진보가 마련되고 거기에서 우리는 높은 차원의 주체의식을 정립케 될 것이다.


- 김대환, 월간 <공군> 1978년 16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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