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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충성 김

광성보정신의 계승



글 : Incelmus (민족문제연구회 사상연구부원)


지금은 잊혀진 옛 광성보 정신을 되살리는 것이 우리에게 무슨 의미를 갖는가. 


지금으로부터 153년 전 6월 1일, 미군 함대가 조선당국의 허가 없이 일방적으로 강화해협에 대한 탐측을 감행하면서 양국의 충돌로 신미양요가 발발했다. 그 계기로 된 1866년의 제너럴 셔먼호 사건에서도 보다시피 조선이 베푼 호의, 정박 허가 및 보급품 지원 등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약탈을 자행했고 그 과정에서 조선인 민간인 일곱 명이 사살당했다. 이런 잔악무도한 행위에는 아무런 정당성이 없었고, 그러므로 조선의 자기방어는 지극히 당연한 대응이었다고 하겠다. 그러나 손돌목으로의 무단 침입에 대한 조선의 경고 포격에 미군은 즉각 반발했고 이는 곧 6월 10일의 광성보 전투로 이어진다. 어재연 장군과 그의 아우 어재순, 그리고 5백 명의 조선 군인들은 강화해협을 지키는 반도 지형의 요새인 광성보에 죽음의 진을 치고 생애 마지막 투지를 불사르기로 결심한다.

 

 청나라에서 서양의 서적들을 수입해 와 그 문물의 저력을 알았던 조선의 군인들은 미군이 자신들보다 우수한 전력과 기술력을 갖추고 있을 것이라는 것쯤은 대강이나마 진작 파악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에게 전력이 객관적으로 강하고 약함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어재연과 어재순 형제는 이 전투의 결과로 자신들이 산화하고 말리란 것을 마음 속 깊이 확신했고 심지어 그들의 식구들조차도 이를 알고 있었다. 그날 광성보를 지킨 조선의 군인들 전체가 죽음을 염두하고 있었다. 수륙양면의 포격으로 광성보의 화약고마저 폭파된 상황 속에서, 조선군은 개인 지참 분량의 총탄만으로 전투에 임해야 했다. 그들이 손에 쥔 무기인 화승총은 사거리가 100m도 채 되지 않고 화력과 명중률도 터무니없이 낮았다. 게다가 무명을 여러 장 겹쳐 만든 면갑은 방탄에 도움도 되지 않았을뿐더러 총알이 스치기만 해도 불이 붙어 착용자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었고 또 무더운 날씨와 겹쳐 신체의 활력을 앗아가기만 했다. 전력은 질적으로도 양적으로도 압도적으로 열악했다. 그날의 상황을 미군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

 

 “조선군은 비상한 용기를 가지고 응전하면서 성벽에 올라 미군에게 돌을 던졌다. 그들은 창과 칼로 미군을 상대했는데 그나마도 없는 병사들은 맨손으로 흙을 쥐어 미군의 눈에 뿌렸다. 모든 것을 각오한 채 그들은 한 걸음씩 포위하며 다가오는 미군과 오직 죽기로 싸웠고 그리하여 결국 사살당하거나 물속에 떨어져 죽기도 하였다. 부상당한 자는 투신자살을 감행했는데 그중에는 스스로 목을 찌른 다음 물속으로 뛰어들기도 하였다. 성내에서의 전투는 더욱 처참하여 1백 명에 가까운 조선군이 백병전에서 쓰러졌다. 부상당하여 포로가 된 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끝까지’란 실제로 실행되는 수준과 비교해서 볼 때 자주 남용되는 표현이지만, 광성보에서 우리 민족의 위대한 전사들은 문자 그대로 ‘끝까지’ 결사항전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조선군이 참패하기는 했지만, 그 모든 불리한 여건 속에서도 단 한 명의 탈영병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저 바다 건너의 약탈자들이 보기에도 깜짝 놀랄 만한 일이었다. 오늘날 현대인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이 광성보 정신, 즉 극한의 투쟁 정신은 어디에서 기원하는 것인가. 이 숭고한 동기의 연원을 되짚어 볼 때, 물론 섣부른 분석은 지양해야 하겠지만, 그것은 우리 민족의 조상들이 자기 조국에 뿌리내리고 밭을 갈며 일궈온 땅을 사랑하는 민족의 공동의식, 농촌 공동체 의식에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앵글로색슨의 역사는 땅을 잃고 빼앗는 끊임없는 정복 전쟁의 역사이며, 약탈자의 정신을 개척자의 정신이라 포장하고 자신들에게 언제나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이민족들을 지배하며 군림해온 미국의 입장에서는 심지어 생명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국토를 지키고자 하는 광성보 정신의 이런 비합리적인 행동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비록 근대화된 무기에 밀려 패전을 경험하기는 하였으나 한민족의 정신마저도 패배한 것은 아니었으며, 그렇기에 조선군이 보여준 그 말도 안 되는 광신적인 국토 수호 의지에 지레 겁을 먹은 미군은 결국 조선 땅에서 철수하고 만 것이다.

 

 무엇이 강하고 무엇이 약한 것인가. 자기보다 힘이 약한 사람을 짓밟는 것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이다. 또 두려움을 모름은 모기가 자기보다 거대한 인간의 피를 빨아먹기 위해 맹목적으로 날아드는 것처럼 단지 짐승의 만용이지 진정한 용기가 아니다. 하지만 두려운 줄 알면서도 자기보다 힘이 강한 사람에게 맞서 싸우는 것은 아무나 다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물질에 대한 정신의 우위, 정신의 강함, 위대한 인간을 방증하는 것이다. 손에 잡힐 듯 말 듯 계속 형태를 바꾸며 생멸하는 물질과 마찬가지로 한 사람은 단지 죽으면 끝나지만 그 정신은 세대에 세대를 거쳐 이어진다. 그리고 먼 미래의 후손에게까지 닿아 그의 정신에 돌이킬 수 없는 자국을 남기기도 한다. 그러므로 만일 강함의 기준이 단지 그 파괴력이 아니라 지속 가능성에 있는 것이라면, 물질 내지 신체의 강함보다는 정신의 강함이 보다 본질적인 강함인 것이다. 그리고 광성보 정신이야말로 우리에게 그런 진정한 강함이란 무엇인가를 알려주고 있다.

 

 우리가 광성보 정신에서 보는 것처럼 설령 강대국이 우리나라를 지배하려 든다 해도, 우리의 민족정기가 여전히 올곧고 살아 있다면 그것은 언젠가 극복될 수 있는 문제일 것이다. 그러나 그 정신의 기세마저도 꺾인다면 우연히 강대국이 쇠락하여 천우신조 같은 독립의 기회를 맞는다 해도 거기에 길든 우리 민족에게 예속은 영속적일 것이며 해방은 불가능할 것이다. 어떤 객관적으로 불리한 상황에 처하더라도 결코 독립의 의지를 굽히지 않으며, 또 가치 있는 목적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전부를 희생할 수 있음을 보이는 것, 그것이 광성보 전투에서 우리 민족의 조상들이 보여준 강함이자 용기인 것이다. 서구의 물질적인 세계관과 문물이 우리 민족의 정신세계를 능멸하며 오염시키는 지금에도 우리는 조상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이 점을 역사로부터, 광성보 정신으로부터 다시 배우고 새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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